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선 핵심 공약인 한반도대운하에 대해 정부 산하기관 3곳이 공동으로 타당성 조사를 해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기관이 야당 후보의 공약 타당성을 조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청와대가 ‘야당 후보 죽이기’라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4일 건설교통부 등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 국토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등 3개 기관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2월부터 대운하 타당성 조사를 실시, “대운하는 경제성이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부운하의 수익성은 비용편익비율(1 이상일 경우 수익성 있음)이 0.16이었다. 100원을 투자할 경우 16원의 수익이 생긴다는 의미다. 또 경부운하의 사업비는 18조원, 수송시간은 48시간, 경부운하 건설에 따른 골재 채취량은 5,300만㎥에 5,00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데 그칠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한 마디로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건교부측은 “수자원공사가 1998년 타당성 조사를 실시해 수익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이번에 다시 검토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당장 이 전 시장측은 “정치 공작”이라고 맹공하면서 청와대 개입설까지 제기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보고서에는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VIP’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등 청와대가 관련된 흔적이 역력하다”며 “청와대가 직접 주문 생산을 의뢰하고 관계 기관이 총동원된 정치 공작용 기획보고서”라고 비난했다.
장광근 대변인도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이명박 죽이기 기획본부장’으로 자리매김하고 나섰나”라고 맹비난했다.
이 전 시장측 대운하 추진단장인 박승환 의원은 보고서 내용을 조목 반박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보고서 내용은 왜곡”이라며 “비용편익비율 0.16이 어떻게 나왔는지 밝혀야 한다. 경부운하 사업비는 14조1,000억원이고 수송시간은 24시간으로 충분한 경제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수자원공사가 산정한 비용편익비율도 이 전 시장이 밝히고 있는 운하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엉터리”라며 “물동량도 TF는 500만톤으로 추정했지만 1,700만톤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방은 양 캠프의 감정싸움으로도 이어졌다. 이 전 시장측 박형준 대변인은 특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측이 보고서를 아군을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고 있다”며 박 전 대표측을 경계했다.
박 전 대표측은 정부 기관의 보고서 작성을 비판하면서도 은근히 논란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표측 유승민 의원은 “정부 기관이 검증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그러나 “이번 보고서에 나타난 ‘경제성이 없고 환경에도 좋지 않다’는 내용 자체는 타당하다”며 “차제에 대운하의 장ㆍ단점을 전문가들이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도는 불순하지만 보고서의 지적은 맞다며 이 전 시장측을 압박한 것이다.
박 전 대표측이 보고서를 활용해 이 전 시장을 공격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측은 “사실과 전혀 관계 없이 박 전 대표를 끌어들이는 비열한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청와대측은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잘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매우 높고 자칫 국토와 국민의 삶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대통령도 이것이 타당한가라는 관심과 의문을 갖고 있는 사안이므로 관련 기관들이 과거 자신들이 연구했던 것을 다시 찾아내 현실에 맞게 다듬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고 의무”라고 밝혔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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