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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23> 진글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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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23> 진글라이더

입력
2007.06.0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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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飛行)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홀로 날 수 없고, 그래서 열망은 더 커진다. 오죽하면 그리스 신화 속 등장인물 이카루스마저 더 높은 곳을 향하다 추락하고 말았을까. 유사 이래 인간은 각종 비행수단을 발명하며 신화를 현실로 만들었다.

현재 국내에는 세계가 인정하는 창공의 지존이 있다. 바로 송진석(50) ㈜진글라이더 대표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1년 365일 가운데 200일, 하루 24시간 중 5시간 이상을 하늘에 떠 있었다. 누적 비행시간만 무려 3만 시간(1,250일)이나 된다.

그의 하늘사랑은 ‘진’이라는 세계 최고의 명품 패러글라이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죽을 고비와 배신, 좌절을 딛고 다시 비상해 이룬 결실이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ㆍ셋이 걸으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라는 <논어> 말처럼 그의 성공엔 빠지지않고 꼭 등장하는 소중한 인연 셋이 있다. 세 번의 위기를 매번 기회로 돌린 만남이었다.

선친, "제대로 된 걸로 다시 날아올라라."

1978년 여름 당시 대학(홍익대 조선공학과) 3학년이던 송 대표는 경기 안양시 석수동 활공장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다가 추락했다. 오른쪽 볼이 으깨져 얼굴이 함몰되고 갈비뼈와 팔 다리가 부러졌다. 공포가 밀려왔다.

취미로 여겼는데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할 줄 몰랐다. 어머니(87)는 셋째 아들의 침상에 엎드려 “다신 글라이더 옆엔 가지도 말라”며 대성통곡했다. 젊은 날의 예기치 않은 사고가 평생의 장애(현재 4급 장애인)로 남은 터라 그는 다짐했다. ‘이러다 이카루스 꼴 나겠다. 죽어도 글라이더는 안 탄다.’

내과의였던 선친(송기영ㆍ80년 작고)은 달랐다. 몸을 추스를 때쯤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당시로선 거액인 15만원이 들어있었다. 부친은 “싸구려 글라이더를 타다가 사고가 난 모양이다. 성능 좋은 걸로 하나 다시 잘 만들어서 안 다치게 해라”고 말했다.

뜻하지 않은 응원 덕분에 그는 또 창공의 품에 안겼다. 그는 “그 돈으로 해외잡지와 책을 보고 연구해 제대로 된 행글라이더를 만들었다”며 “선친의 다독임이 없었다면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81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에도 행글라이더반을 만들어 비행을 계속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라이더는 취미에 불과했다.

단양 할아버지, "겉돌지 말고 세계로 날아올라라."

85년 집안 문제로 퇴사했다. 얼추 정리가 되자 행글라이더 국제대회가 열리는 독일로 무작정 향했다. 전세계 45개국의 젊은이가 기량을 뽐내며 하늘을 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 무렵 행글라이더보다 착륙장이 좁아도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패러글라이더로 바뀌는 추세였다.

‘그래 글라이더 전문 비행사가 되자.’ 그는 그 길로 독일 글라이더 공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는 비행 실력뿐 아니라 독일의 선진 글라이더 제조공법까지 익히게 됐다.

그리고는 패러글라이더 자체 제작에 들어갔다. 돈벌이라기보다는 비행사로서 좀 더 괜찮은 글라이더를 갖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였다. 그가 만든 패러글라이더의 성능은 입소문이 났고, 한 일본 업체가 합작제안까지 해왔다. 87년 국내에 돌아와 ‘예스맨 상사’라는 간판을 걸었고,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으로 주문 제작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국내업체 ‘에델’의 합작 제의가 들어왔다. ‘기술이 우위인 일본업체와 계속 일할 것인가, 국내기업으로 바꿀 것인가’하는 선택의 고민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 사람의 한마디를 듣고 에델의 개발이사로 참여했다. 당시 송 대표를 돕던 ‘단양 할아버지’ 김진영씨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라”고 말했다.

송 대표가 디자인한 패러글라이더 ‘에델’은 92~97년 국제대회를 석권하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패러글라이더 브랜드가 세계의 창공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송 대표는 “단양 할아버지는 저에게 글라이더를 배웠지만 그분은 저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했다. 독일로 떠날 때 350만원의 여비를 선뜻 건넨 것도, 글라이더를 ‘활인(活人)의 도구’로 만들어보라고 독려한 것도 단양 할아버지였다.

톰보이 회장, "세계최고를 만들었는데 왜 좌절해."

외환위기는 송 대표에게도 최대의 시련이었다. 그는 경영책임을 지고 개발팀 6명과 함께 거리로 쫓겨나야 했다. 최고의 글라이더를 만들었다는 자부심 뒤에 남은 건 배신감과 팍팍한 생계 걱정이었다. 그는 ‘다시는 패러글라이더를 만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한 일본인이 3억원을 내밀며 경기용 패러글라이더를 만들어 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난감했다. 공장도 없고 기계도 없었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형로 톰보이 회장이었다. 패러글라이딩 마니아였던 최 회장은 “미국 출장 중에 명품으로 손꼽히는 글라이더가 한국인 송진석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송 대표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최 회장은 “세계인의 인정을 받는 제품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포기하지 말라”며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최 회장은 경기 용인시의 물류창고를 내주는가 하면 의류 재봉경험이 풍부한 인력까지 대줬다. 덕분에 송 대표는 98년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건 진글라이더를 설립하고 선수용 기체 ‘부메랑’을 개발했다. 대박이었다. 그 뒤 진글라이더는 3,000여개의 명품 브랜드를 쏟아내며 10년 가까이 세계의 창공을 점령하고 있다.

조영호 기자 voldo@hk.co.kr용인=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제품마다 5000시간 이상 시험 비행

㈜진글라이더는 돈을 잘 버는 기업은 아니다. 한해 매출이 100억원을 넘지 않는다. 물건을 많이 팔기보다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수출은 가격경쟁력이 최고지만 ‘진’은 한푼의 에누리도 없다. 주문이 아무리 밀려도 ‘불량률 제로’가 되기 전까진 제품을 내놓지도 않는다.

일면 자만으로 비치는 구석이 있지만 세계의 패러글라이더 마니아는 ‘진’의 새 제품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브랜드 ‘진’은 2001년부터 줄곧 세계시장 점유율 1위(30%)를 꿰차고 있다. 임직원 수는 고작 165명이고 경기 용인시의 작은 2층 건물을 본사로 쓰고 있는 작은 회사가 말이다. 외형보단 내실이 튼튼한 셈이다.

사실 패러글라이더는 봉제산업에 속하지만 대당 판매가격은 300만~500만원에 이르는 고부가가치 업종이다.

진글라이더는 무엇보다 품질과 기술이 최고다. 집요할 정도다. 한 제품 당 5,000시간이 넘는 시험비행을 통해 한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장(송진석 대표)이 다치고 직원이 불의의 사고로 숨져도 완벽한 제품에 대한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송 대표는 “패러글라이더의 원리를 개발한 미 우주항공우주국(NASA)에 날개의 복원력을 높이는 방법을 문의했더니 ‘직접 실험해서 알아보라’는 답을 얻었다”고 했다. ‘진’은 이를 “직접 타보지 않으면 문제점을 알아낼 수 없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진’의 제품들은 2001년 7월 세계패러글라이더대회 전부문 우승 및 대회 3연패 등 무수한 기록을 세웠다. 정상급 패러글라이딩 선수들은 부메랑 밴디트 보난자 등 진글라이더 제품을 ‘꼭 타고 싶고, 꼭 소장하고 싶은 명품’으로 떠받든다. 초보자용 ‘볼레로’도 마찬가지다. 성능도 최고지만 패러글라이더를 타는 사람(송 대표)이 직접 시험해 만든 제품이라는 신뢰 때문이다.

‘진’은 매출액의 15%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해 세계 최경량 기체 ‘예티’(2004년), 스키와 패러글라이더를 결합한 ‘스피드 플라잉’(2006년) 등 매년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다.

특히 비수기인 겨울을 겨냥해 개발한 스피드 플라잉은 1년도 안돼 400여대가 팔려나갔다. 스피드 플라잉이라는 이름과 이를 활용한 레저종목 자체도 ‘진’이 만들었다. ‘진’의 꿈은 더 멀리 있다. “지금보다 간편하고 안전하게 누구나 다 손쉽게 하늘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진’의 시험비행은 계속되고 있다.

용인=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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