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영(31ㆍ여)씨는 3월부터 강원 강릉시에 있는 한국폴리텍Ⅲ대학 강릉캠퍼스 산업잠수과에서 수중용접 1년 과정을 배우고 있다.
키 162cm인 성씨의 몸무게는 50kg이다. 수중용접을 위해 물에 들어갈 때 입고 쓰고 메야 하는 장비의 무게가 딱 50kg이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그 무게에 적응했다지만 처음엔 장비 착용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른다.
잠수복을 입고 웨이트 벨트를 찰 때만 해도 괜찮았다. 동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산소탱크를 등에 메면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는 바람에 뒷걸음질치기 바빴다. 여기에 15kg짜리 헬멧을 쓰면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성씨는 “쇳덩어리들을 몸에 주렁주렁 다는데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래도 지금은 견딜 만 하다”며 웃었다.
산업잠수과에서는 수중 20~30m에 들어가 선박이나 교각 등 해저 구조물들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데 필요한 수중용접을 비롯해 수중촬영, 수중토목, 수중폭파 기술을 배운다. 물 속 작업이라 땅에서보다 체력적으로 몇 배는 더 고되고 힘들다. 그래서 산업잠수과는 남학생 일색이었다.
성씨는 산업잠수과 전체 학생 33명 중 유일한 여학생이다. 2003년 과가 생긴 뒤 졸업한 여학생은 모두 4명이다. 외국에서 관련 강사를 하거나 국내 조선업계에서 일한다. 성씨는 “홍일점이라고 공주 대접을 받아 본 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어린 남자 동기들에게 “형”으로 불리며 허물없이 지낸다.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수중용접이다. 두 쪽 난 철판도 불꽃이 한번 지나가면 감쪽같이 달라붙는다. 그는 “물 속에서 불꽃이 튀는 것도 신기하지만 떨어져 있던 철판이 마술처럼 착 붙을 땐 정말 짜릿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는 소모품일 뿐”이라는 회의가 들었다. 고졸 출신의 여자가 일에 대한 열정만 갖고는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절감했다.
그래서 지난해 일하던 헤드헌팅업체를 박차고 나왔다. “늦은 나이지만 전문 기술과 지식을 배워 자격증을 따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며 노동부가 전액 무료로 운영하는 종합기술전문학교인 폴리텍대학에 들어갔다. 스킨 스쿠버 강사 자격증이 있는 남동생이 산업잠수과를 소개해 줬다.
산업잠수 수업은 주로 교내에 마련된 지상2층 308평 규모의 실내수조에서 한다. 그러나 해양실습은 바닷속에서 한다. 성씨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해양실습 때가 가장 설렌다. 물 속에 있는 시간이 채 20분도 안 되지만 푸른 바다에 풍덩 빠져 수중 카메라로 사진 찍고 수중용접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성씨는 “이제 겨우 한 발짝을 뗐을 뿐”이라고 말한다. 바다에 한 번 나갔다 올 때마다 남자 동기들에 비해 체력적으로 많이 딸린다는 걸 실감한다. 뭍으로 나와 가쁜 숨을 몰아 쉴 때마다 이렇게 다짐한다. “난 할 수 있다. 난 강하니까.”
수중용접 자격증 시험을 보려면 산업잠수과 1년 과정을 마친 뒤 물 속에서 구조물을 자유롭게 옮기고 조립할 수 있는 잠수기능사 자격증부터 따야 한다. 그는 “넉넉잡아 3년은 더 배워야 수중용접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것”이라며 “그 때쯤 사랑하는 남자와 바다 속에서 멋진 결혼식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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