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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소설 넘나드는 '문학 곡예사'가 본 예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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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소설 넘나드는 '문학 곡예사'가 본 예술이란…

입력
2007.06.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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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폴 오스터 지음ㆍ이종인 옮김 / 비룡소 발행·200쪽·8,000원 / 열린책들 발행ㆍ352쪽ㆍ9,800원 파울 첼란 등 20세기 이끈 작가들 소개와 비평

1974년, 뉴욕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는 아직 건재해 있었다. 그 해 7월 프랑스 곡예사 필립 푸티는 거기서 세기의 곡예를 펼쳤다. 쇠밧줄 하나를 두 건물 꼭대기에 걸쳐 놓은 뒤, 긴 막대 하나로 균형을 잡으며 죽음의 횡단을 멋지게 성공해 보였다. 그 사건은 당시 27세의 미국 문학도 폴 오스터의 영혼을 흔들었다.

8년 뒤, 오스터는 <고공 줄타기> 라는 글로 당시의 경탄을 재생했다. 일체의 상업적 의도 없이 감행된 모험에 감동한 그는 그 순수의 곡예를 가리켜 “고독의 예술, 자아의 가장 어둡고 은밀한 부분에서 자신의 삶과 마주치는 방식”이라고 서술했다. 문학 비평으로 단련된 예리한 필봉은 사태의 근원적 의미를 간파했다.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은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가 문자와 삶이라는 텍스트에서 길어 올린 치밀한 사유의 흔적을 보여 준다. 그를 만나 현실, 문학, 환상이 어우러져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지은이는 이미 <굶기의 예술> 이란 제목의 책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은 1997년에 발간됐는데 그 간 정보가 부족했던 서구 문학계의 새 소식과 함께, 거기서 형성되고 있는 문학적 담론의 양상도 함께 알려주는 소식통 노릇을 한다.

문학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 삶의 회로에 연루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은 동서고금의 차이가 없다. 책은 도입부의 글에 <굶주림의 예술>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자기 파괴적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크누트 함순의 장편 <굶주림> 에 주목, 예술의 본래적 의미를 살핀다.

찰스 레즈니코프, 파울 첼란 등 20세기 문학사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작가들의 작품 분석은 현대 해외 문학의 흐름에 대해 접할 길이 묘연했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정보를 제공한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프랑스에 살면서 독일어로 나치를 비판하는 시를 썼던 파울 첼란, 일상적인 시어로 높은 상징의 세계를 보여 주는 존 애시버리, 장편소설 에세이 희곡 시 대화 논평 등의 형식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에드몽 자베스, 소박과 장엄이 혼합된 미국 시인 윌리엄 브롱크 등 문학의 새 지평이 소개된다.

카프카 50주기인 1974년에 쓴 <카프카를 위한 만가> 는 “모든 행위의 유일한 목적이 자신을 전복시키고 자신의 힘을 침식하는 데 있었”던 카프카를 상기하면서 예술가의 궁극을 밝히고 있다. 당대 문단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카프카는 결국 예술의 운명과 역할을 명시한 작가이자 끊임없이 살아나는 빛이라고 책은 말한다.

그 간 국내 소개되지 않은 외국 문학의 정보는 물론, 카프카 등 거장들의 작품 중 생소한 것과 그들의 편지 등을 보는 재미가 크다. 지은이가 한 인터뷰에서 소개한 베케트의 말은 예술의 운명을 압축한다. “예술가라는 것은 남들이 실패할까 봐 감히 대들지 않는 곳에서 실패하는 사람이다.” 책은 그에 대한 인덱스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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