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 66세의 영조 임금은 15세의 어린 신부를 계비로 맞아 창경궁 통명전에서 혼례를 올린다. 사별한 정비 정성왕후의 자리를 이어 받은 그이가 정순왕후다.
정순왕후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는 영조의 질문에 '인심이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속 깊은 현답을 내놓는 등 간택 과정에서 남다른 총명함을 보였다고 한다.
2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두 젊은이가 왕과 왕비가 되어 당시의 영조와 정순왕후의 궁중혼례 방식 그대로 결혼한다. 신랑은 청혼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는 김동완(27)씨, 신부는 초등학교 교사 윤아름(25)씨다.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가 궁중혼례를 재현하는 행사를 위해 실제 예비부부들 가운데 공모해서 선발한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은 창경궁에서 자주 데이트를 하다가 궁중혼례를 치를 한 쌍을 찾는다는 현수막을 보고 응모, 서류-면접-복식 심사의 삼간택을 통과했다. 특별한 결혼식을 앞두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궁중혼례의 복잡한 절차를 익히고 왕과 왕비다운 걸음걸이를 연습하는 등 준비를 해왔다.
이번 행사는 영조와 정순왕후 결혼식의 모든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한 조선시대 문헌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를 바탕으로 재현한다. 궁중혼례는 육례(六禮)를 갖췄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간택된 왕비의 임시 처소인 대궐 밖 별궁으로 왕이 사자를 보내어 혼인을 청하는 '납채(納采)', 성혼의 징표로 예물을 보내는 '납징(納徵)', 길일을 택하는 '고기(告期)', 왕비를 책봉하는 '책비(冊妃)', 왕이 직접 별궁으로 행차해 왕비를 데려오는 '친영(親迎)', 왕과 왕비가 서로 절하고 술을 주고 받는 '동뢰(同牢)'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친영과 동뢰가 오늘날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에 해당한다. '동뢰'는 '굳게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는 의장기와 의물이 늘어서고, 왕실 종친과 문무백관이 참석한 가운데 왕과 왕비는 서로 맞절하고 천지신명에 고하고 혼인 서약을 한 다음 부부의 연을 상징하는 표주박 잔으로 술을 나눠 마심으로써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고 잔치를 베풀었다.
이번 재현 행사는 친영과 동뢰를 중심으로 재구성, 시작부터 마치기까지 2시간쯤 걸린다. 김-윤 커플은 가마를 타고 창경궁 선인문을 출발해 통명전으로 와서 집사의 진행에 따라 궁중혼례를 올린다.
예전부터 한복 입고 전통혼례를 올리고 싶었다는 신부 윤씨는 "왕비가 되니 상궁들이 치맛자락을 들어주고, 신료들이 '천세(千歲)'를 외쳐 주고 해서 기분이 참 좋다. 리허설을 하면서 8명이 메는 왕비의 가마도 처음 타 봤다"며 즐거워한다.
신랑 김씨는 "궁중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솔 향기 그윽한 아름다운 장소에서 멋진 결혼식을 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다. 통명전은 창경궁의 내전 중에도 특히 화려하고 주변 공간이 아름다운 곳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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