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굴 가이드 / 김미월 지음 / 문학과지성사 발행ㆍ284쪽ㆍ1만원
1977년 생 소설가 김미월씨의 첫 작품집엔 상처 입은 존재들이 그득하다. 그들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가족 혹은 가족과 진배없이 절친했던 지인에게서 비롯한다.
공부든 운동이든 죽어라 열심히 해도 딸이 아닌 아들이란 이유로 어머니에게 외면받고(<유통기한> ), 그토록 자애롭던 아버지가 자기 의붓동생을 성추행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황망해한다( <가을 팬터마임> ). <수리수리 마하수리> 의 주인공은 죽음의 위험에 처한 단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놓여 나지 못한다. 수리수리> 가을> 유통기한>
하여 그들은 탈주하려 한다. 하지만 일상의 인력(引力)은 녹록치 않고, 그들의 심지가 그리 단단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의 후미진 곳에 자신 만의 골방을 마련해 자폐적 유희를 즐길 뿐이다.
골방은 시뮬레이션 게임에 몰두하는 피씨방 카운터(<너클> ), 서울 도심 한복판에 만들어진 인공 동굴( <서울 동굴 가이드> ), 주인집 몰래 옥상에서 가꾸는 정원( <정원에 길을 묻다> ) 등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정원에> 서울> 너클>
세상의 변두리에서 잊은 척, 담담한 척 살아가지만 그들의 기억 보안 장치는 취약하다. 거리에서 본 나비 모양 머리핀(<㈜해피데이>)처럼 사소한 계기에도, 묻어둔 상처는 기어이 뇌리로 호출된다
. 때론 무심히 여겼던 주변 존재가 불쑥 골방을 틈입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주인공들은 제각기 자폐와 소통의 갈림길에 맞닥뜨린다. 작가는 삶의 기로에 선 인물들에게 어느 한 편의 문만을 열어주지 않는다. 작품들의 결말은, 삶의 복잡다단한 비의(祕意)를 품은 듯 다채롭게 변주한다.
2004년 등단한 작가가 3년간 써온 단편 9편을 책으로 묶었다. 첨단과 비루함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의 일상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 이처럼 신선한 소재에 담긴 묵직한 주제의식은, 서른 살 작가의 성숙한 시선을 지시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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