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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역시 노 대통령이다

입력
2007.06.0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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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노무현 대통령답다. 이런 레임덕이 없다. 임기 9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 다소 맥 빠진 모습을 하고 있을 5년 단임 대통령이 연일 각종 미디어에서 스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좋든 싫든 그 모습을 매일 봐야 한다. 지지율 30%가 안 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눈과 귀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린다. 세인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재능만큼은 역시 탁월하다. "필요하다면 (정권 이양 전날인) 2월 24일에도 (남북) 정상회담을 할 사람"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처음에는 '아니, 또 왜 이러나' 싶었다. 기자실 통폐합 얘기다. 그런데 며칠 후 대통령의 말을 듣고 나서 '역시, 그렇구나' 했다.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 핵심이다. "요즘 언론이 기자실 개혁 문제와 관련해 세계 각국의 객관적 실태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많은 선진국들은 송고실도 두고 있지 않다.

언론이 터무니없는 특권까지 요구한다면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기자실 개혁 조치가 언론 탄압인 양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어떻게 이렇게 틀린 사실만 골라서 말하는지 의아스러웠다.

● 진짜 몰라서 하는 말인가

많은 선진국이 프레스 룸이든 브리핑 룸이든 기자실이든 기사송고실이든 이름은 무엇으로 하든 간에 기자가 상주하며 취재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있다. 그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헌법으로 인정된 사회적 제도(언론)에 제공하는 것이지 특정 언론사나 기자 개인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기자실 통폐합 및 공무원 접촉 금지 확대 방안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일부 언론과 정치인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아침에 회의를 함께 하는 사람들 빼고는 대다수가 그리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속으로는 그리 생각할지 모른다. 최근 여러 신문에 보도된 외국 기자, 언론학자들의 인터뷰를 한 번 읽어 보시라.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대통령의 지적 능력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알고도 하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후자라고 하는 편이 화끈하겠다.

하기야 저의랄 것도 없다. 세상사람 다 뻔히 짐작하는 일이 무슨 저의가 될 수 있겠는가. 작년 8월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노사모 회원 60여 명을 초청한 자리에서 한 말을 되새겨 보면 명백한 의도가 드러난다. "우리가 가진 미디어는 소총 딱총 단발총 수준이고 저들이 가진 미디어는 1분에 300발씩, 2,000발씩 마구 쏘아대는 다연발총이고 실탄도 한없이 풍부합니다."

21세기에, 별로 떨어지지 않는 나라에 사는 국민으로서 도대체 언론의 적대성이니 기자실이니 하는 문제가 새삼 정부의 중요 정책 과제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한심하다.

대통령이 이렇게 말해 주면 좋겠다. "기자실이든 뭐든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있는 공간은 다 없애고, 공무원도 일절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 이렇게 확실하게 얘기해 주면 사태가 선명해진다.

그런데 '선진화 차원에서 송고실을 줄이겠다고 하니, 저들 특권 해친다고 하는 소리 아니냐?'는 식으로 문제를 살짝 바꿔치기 해 놓으면 말이 좀 애매해진다.

대한민국 언론이 역대 정권에서 잘못한 점도 많고 하니 찔리는 대목이 있다는 걸 노리는 것일까. 기자 집단 이기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일부 언론은 물론이고 장ㆍ차관까지 함부로(?) 만나는 언론과, 민원실에서조차 홀대 받는 보통 국민을 갈라놓자는 의도일까.

●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올 들어서만도 벌써 개헌에, 기자실에, 국리민복과 별 관계 없는 이슈를 두 개나 선점했다. 다음은 또 무엇일까. "정부에선 검찰이 좀 센 편이고, 정부 바깥에서는 제일 센 것이 재계"라니까 검찰과 재계 선진화 방안일까. 궁금하다. 그리고 답답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정말 아닌데….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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