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빌딩. 정부 부처인 금융감독위원회가 민간 기구인 금감원의 건물에 세를 들어 더부살이를 하는 곳이다. 그 곳 3층에 기자실이 있다. 금감위ㆍ원 출입기자들을 위한 공간이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건물 주인인 금감원의 기자실이다.
청와대 지시로 금감위ㆍ원 출입기자들의 '사무실 전면 출입금지' 조치가 취해진 다음날인 31일. 평소대로라면 사무실 방문 취재활동을 하고 있어야 할 기자들이 독서실 같은 기자실에서 전화를 돌리거나 컴퓨터 자판만 두드렸다.
청와대가 주창하는 브리핑 활성화는 허울일 뿐이다. 금감위ㆍ원의 브리핑은 매주 화요일 오전 실시되는 주1회 정례 브리핑 정도가 고작이다. 그나마 국정홍보처가 정부 각 부처의 브리핑 실적을 관리하는데 따른 구색 갖추기 성격이 짙다.
금감위ㆍ원 간부들이 돌아가며 1주일간 발표할 보도자료 내용을 줄줄 읽는 것인데, 보도 가치가 없는 것이 상당수다. 기자들끼리 쓰는 표현을 빌자면, "주는 것만 받아 먹어서는 도저히 기사를 쓸 수 없는" 출입처인 셈이다. 현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금융시장 감독기구로서 민감한 사안이 많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맞을 듯 싶다.
최근 정부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금감위ㆍ원 기자실은 기자실 통ㆍ폐합 대상에서 제외했다. 업무의 특수성과 지리적 위치가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무실 전면 출입금지 조치로 기자들은 기자실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치고 앉아서 담합만 한다"고 비판했던 기자실이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으로 진짜 죽치고 앉아만 있어야 하는 기자실이 된 것이다. 그것도 정부 부처도 아닌 정부가 세 들어 사는 민간 기구의 기자실을 첫 본보기로 삼은 결과다. 이럴 바엔 왜 통ㆍ폐합 대상에서 제외했는지도 의문이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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