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내에서 대통합신당 창당 방식에 대한 입장 차이가 분명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민주당 통합파는 친노(親盧) 세력까지 포함하는 신설합당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 중도개혁통합신당, 우리당 내 2차 탈당파는 강경 친노파를 우리당에 남겨 둔 채 별도의 신당을 만드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른바 '새천년민주당 방식'과 '새정치국민회의 방식'의 대립이다.
새천년민주당 창당 방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6대 총선 직전인 2000년 1월 젊은 피 수혈을 명분으로 제3지대에 신당추진체를 만든 뒤 기존의 국민회의를 흡수통합했던 방식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정동채 의원 등 일부를 기획 탈당시켜 외부인사들과 창당추진위를 만들게 한 뒤 전당대회를 열어 국민회의 해산과 신당 합류를 결의했다.
옷 로비 사건 등으로 총선 승리가 어렵자 이런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일부 외부인사를 합류시켰지만 신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모태는 사실상 국민회의였고 책임론이 거론됐던 동교동계 핵심 실세들도 모두 옮겨 갔다.
현재 우리당 지도부와 탈당에 신중한 초재선 그룹, 민주당 통합론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제3지대 신당 창당은 이 같은 경로를 상정하고 있다. 시민사회세력인 '미래구상'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듯하지만 우리당 존속을 전제로 '창당 선발대'가 기획탈당해 창준위를 이들과 공동 구성하겠다는 계획도 그렇고, 친노세력을 포함한 우리당 전체가 고스란히 신당에 합류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이에 반해 국민회의 창당 방식은 일부를 기존 정당에 남겨둔 채 이뤄지는 신당 추진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1995년 정계에 복귀한 김 전 대통령은 지방선거 공천 문제와 맞물려 세대교체론으로 자신에게 맞선 민주당 이기택 총재와 김원기 의원 등을 배제한 채 같은 해 9월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당시 민주당 소속의원 95명 중 65명이 국민회의에 합류하면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우리당 내 정대철 상임고문과 김덕규 문학진 의원 등 2차 집단탈당파는 친노세력 20여명을 우리당에 남겨 놓고 비노(非盧) 세력 전체가 결집하는 신당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 합당 협상을 진행 중인 중도통합신당과 민주당 지도부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우리당에 친노 강경파가 남아 있어야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신당으로 옮아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깔려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