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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스승을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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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스승을 그리워하다

입력
2007.05.3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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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여고와 이화여대가 5월 말 창립 121주년을 맞았다. 그 학교 졸업생인 나는 해마다 개교기념 행사에 참여하면서 교육의 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곤 한다.

두 학교의 뿌리인 이화학당은 미국 감리교 여성선교부가 파견한 선교사 메리 F. 스크랜톤 부인이 1886년 5월 단 한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은 완강한 남존여비의 전통에 억눌려 살고 있었다. 양반이나 서민이나 여자는 '2등인간' 이었다.

● 당신이 뿌린 밀알 울창한 숲으로

교육을 통해 여성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열어주고자 했던 스크랜톤 부인은 한국에 온지 1년이 지나도록 학생을 구할 수 없었다. 양반집 딸들은 내외가 심해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가난한 집에서는 딸의 일손이 아쉬워 학생으로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개교한 배재학당에는 영어와 신학문을 배워서 출세하려는 청년들이 몰려왔지만, 여자의 경우는 달랐다.

이화학당의 첫 학생인 김씨는 양반의 소실로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을 맡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는데, 3개월 후 병을 얻어 학교를 그만뒀다. 두번째 학생은 너무 가난해서 어머니가 맡기고 간 10살짜리 꽃님이, 세번째 학생은 호열자에 걸려 성밖에 버려졌던 4살짜리 별단이였다.

네번째 학생 김점동이 한국 최초의 여자의사가 되었다는 것은 교육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웅변으로 말해 준다. 10살 때 이화학당에 와서 10년 동안 공부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간 그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화학당이 문을 연지 불과 14년만인 1900년의 일이다.

그는 박씨와 결혼하여 미국식으로 에스터 박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남편은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가서 막노동을 하며 외조(外助)를 하다가 아내의 졸업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났다. 의사가 되어 금의환향한 김점동은 개복수술을 성공적으로 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또 틈만 나면 당나귀를 타고 벽촌으로 다니면서 환자들을 무료진료했다. 교육 받은 여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그는 33살 때인 1910년 과로로 병을 얻어 짧은 생을 마감했다.

교육은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여성들의 자각을 높이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게 했다. 전국 곳곳에 여학교가 설립되고, 1919년 3.1만세사건에 많은 여학생들이 참여했다.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 열사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죄로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8세에 순국했다. 여성들을 교육시키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변화다.

5월 29일 저녁 이화여고 학생들은 개교기념일 전야제로 횃불예배를 올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노천극장에 모인 학생들이 일제히 촛불을 밝히자 그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학생들은 나무 십자가에 불을 붙였고, 제 몸을 태우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교가를 불렀다. <...약한 이 힘 되고 어둠에 빛 되자...>

그 순간 나는 스크랜톤 선생님 생각이 났다. 선생님은 얼마나 기쁘실까. 자신이 뿌린 한 알의 밀알이 울창한 숲으로 자라고, 그 숲에서 <약한 이 힘 되자> 는 소녀들의 노래가 들려올 때 얼마나 가슴 뿌듯하실까.

예배가 끝나고 어두운 교정을 걸어가면서 학교 재단 이사장인 조용준 목사님이 이렇게 고백하셨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물론 다시 태어난다고 믿지는 않지만, 나는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의 나를 만든 절반의 가르침은 김원규 교장선생님이 주신 것입니다."

● 제자들 전 생애에 남은 가르침

함께 걷던 동창들은 합창하듯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신봉조 교장선생님이 너무 너무 그립습니다"

스승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선생님의 영향은 학교에 다니는 3년이나 4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긴 시간 속에, 제자들의 전 생애 속에 선생님의 가르침은 살아있다. 스승이 제자들의 마음에 밀알을 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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