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로 다이아반지로…
스스로의 장례식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난 어려서부터 유쾌한 장례를 꿈꿔왔다. 가진 재산을 다 털어서 파티를 열고, 모든 이들에게 공짜 술을 돌리는 안도 생각해봤고, 화장을 한 다음에 골분을 흙에 섞어서 그럴듯한 백자 화병(그러니까 진짜 본차이나)을 만들어 박물관 휴게실에 기증하는 안도 생각해봤다. 혹시 어린이 관람객이 실수로 화병을 깨뜨리면, “어이쿠, 임근준씨 깨졌다. 생전에도 아슬아슬하게 살더니만, 쯧쯧”하며 사람들이 혀를 찰 텐데, 상상만 해도 즐겁다.
깨진 화병을 그냥 두면 사람들이 날 두려워했다는 뜻이고, 아말감으로 붙여놓으면 내 삶을 이해했다는 뜻이며, 금이나 은으로 복원하면 날 사랑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괴상한 성격을 타고난 한 평론가의 바람일 뿐, 널리 권장하긴 곤란하다.
여태껏 본 방법 가운데 가장 로맨틱한 방법은 모래시계로 연인을 합장하는 것이다. 백년해로한 부부가 사후에 골분을 합쳐 만든 모래시계로 자신들의 영원한 사랑을 증언한다는 발상은 꽤 멋지지 않은가. 허나, 실제로 적용한 사례를 살펴보니, 제작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뼈를 일정한 크기의 입자로 갈지 않으면, 모래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관으로 쓸 비교적 큰 사이즈의 모래시계용 유리는 어디서 구하냐고? 인터넷으로 특별 주문할 수 있고,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www.hourglasses.com
반면에 보다 흥겨운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1950년대 이후 서아프리카의 가나 사람들은 ‘환상 관(팬터지 코핀)’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엄청나게 화려한 색채로 관을 꾸미는 데, 그 디자인은 고인이 살아서 누구였고 또 무엇을 했는가에 의거한다.
즉 고인이 이름난 어부였으면, 그가 잡은 커다란 물고기의 모양으로 관을 만들고, 사냥꾼이었으면 그가 잡은 용맹한 사자의 모습으로 관을 만드는 식이다. 다양한 환상 관 가운데 내 맘에 드는 것은 코카콜라 병 모양의 관, 운동화 모양의 관, 자동차 모양의 관 등이다.
독특한 것은 관 뿐만이 아니다. 낙천적인 가나 사람들은 신문에 커다란 부고 광고를 실어 일가친척을 다 불러 모으는데, 정말 사돈의 팔촌까지 다 모이는 경우가 적잖아 장례가 부족회의에 버금가는 수도 있다. 그리곤 고인의 돈으로 성대한 파티를 열어 며칠씩 신나게 춤추고 먹는다. 그들의 장례는 모두가 노는데 지칠 즈음 끝나는데, 어찌 보면 일종의 '홈커밍데이' 같다.
반면, 무신론자이자 블랙 유머로 무장한 디자이너인 지미 로이조(www.auger-loizeau.com)는 보다 황당하게 현대적인 디자인을 내놨다.
그의 디자인 연작 <애프터-라이프> (2001)는 죽은 자의 위에서 추출한 위산으로 작동하는 1.5볼트짜리 특수 건전지와 그 힘으로 작동하는 조명을 제안한다. 무신론자들도 잦아드는 조명을 보며 고인을 추모하라는 뜻이라나. 애프터-라이프>
제품 디자이너인 나딘 자비스(www.nadinejarvis.com)는 좀 더 시적인 형태를 제시했다. 첫째, 골분에서 추출한 탄소로 만든 연필: 연필에 죽은 자의 이름과 생몰년을 적어 유족들에게 나눠주라는 뜻인데, 1인분으로 대략 240자루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둘째, 골분을 섞은 새 모이로 만든 새 모이통: 아름다운 형태로 빚어진 새 모이통은 몸통 전체가 새 모이로 구성됐기 때문에 고인은 파랑새로 환생하게 되는 셈이란다. 꽤 그럴듯하지만, 글쎄. 난, 건전지나 새모이가 되는 것 보다는, 골분에서 추출한 탄소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만들어주는 라이프젬사(www.lifegem.com)의 수준 높은 서비스를 추천하겠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미술 디자인 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