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문 도굴꾼에게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등 희귀 도자기 수십 억원 어치를 팔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도자기가 전국 각지에서 도굴 내지 도난된 진품(眞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의뢰인과 입수 경위 등을 추적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인 도굴 및 전문 절도범 서상복(46)씨가 의뢰인의 부탁을 받은 뒤 곧바로 수사기관에 신고함으로써 드러났다.
● 어떤 문화재인가
의뢰인은 최근 서씨에게 A4 용지 크기의 사진 10여장을 우편으로 보냈다. 도자기 원본을 카메라로 찍은 뒤 컴퓨터로 스캔한 사진들이다.
사진 밑에는 작품 이름과 실물 크기가 적혀 있고 한 작품을 상하좌우 등 여러 각도에서 찍기도 했다. 서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문화재만 20년 이상 훔쳐 국내 최고로 꼽히지만 이렇게 귀중한 도자기는 대기업 박물관에서조차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진 속 도자기는 청자음각모란문표형주자, 청자상감모란접문주자, 청자양각용문벼루, 운학문상감매병, 고려청자양각원앙형향로, 청자양각기린형향로 등 12~13세기 고려청자 6점과 분청사기조화모란문편병, 분청사기조화어문병 등 15세기 조선시대 작품 2점이었다.
서씨는 “의뢰인 또는 의뢰인과 연결된 누군가가 고관대작이나 신분 노출을 꺼리는 부유층, 전국의 여러 박물관을 돌며 훔친 것 같다”며 “일부는 국보ㆍ보물급 수준으로 워낙 비싸 국내에서 ‘판로’를 찾지 못할 경우 해외로 빼돌릴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유출이 우려된다는 뜻이다.
●진품 여부와 가격은
서씨는 “내 눈은 못 속인다. 더욱이 선수들(도굴 및 절도범)끼리는 서로 거짓말하지 않는 게 이 바닥의 원칙”이라며 ‘100% 진품’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애령 연구관은 “사진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들다”면서도 “분청사기 2점은 사진으로 봐도 진품이 확실하고, 청자음각모란문표형주자 등 청자 2점은 일부가 파손된 진품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청자양각용문벼루는 ‘처음 보는 작품’이라며 평가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호림박물관 관계자도 “평소 수사기관에서 문의해 오는 도자기보다는 확실히 ‘급’이 높은 작품들이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얼마나 할까. 박물관에서는 점 당 수천만~수억 원 정도로 평가했지만 판매상들은 훨씬 높게 매겼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골동품 판매상은 “진품이라면 점 당 수억~수십 억원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자양각용문벼루는 20억원 이상이라는 말도 나온다.
●서상복씨는 누구
의뢰인은 왜 감옥에 갇혀 있는 서씨에게 판매를 부탁했을까. 서씨는 문화재 도굴 1인자로 꼽힌다. 2001년 검거 당시 검찰이 밝힌 것만 해도 사리, 탱화, 불경 등 국보급 문화재 35점을 훔쳤다.
지난해 9월 삼성리움박물관이 경기 가평군 현등사에 반환한 사리와 사리를 담은 그릇(사리함)도 그가 도굴한 것이다. 최근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직지보다 앞선 불경을 도굴했다고 주장했지만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서씨는 “의뢰인은 내가 물건을 구입해줄 만한 ‘큰 손’들을 소개 시켜 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며 “다급했는지 면회도 오고 편지도 여러 차례 보냈다”고 말했다. 의뢰인은 판매를 주선해 주면 판매금액의 30%를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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