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춘기 소녀에게 웃음을 주었다니 너무나 기쁩니다.”
31일 오전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아름다운 ‘가발 기증식’이 열렸다. 이화여대 한국학과 대학원생 김지현(33)씨가 4년간 소중히 길러왔던 머리카락이 가발로 제작돼 소아암으로 투병중인 중학교 2학년생 정우빈(13) 양에게 전달됐다.
김씨는 1년 전 허리춤까지 닿도록 고이 기른 머리카락을 누군가에게 기증하자고 마음먹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잖아요. 어차피 자르게 될 머리카락이니 좀더 의미있게 쓰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증할 곳을 찾게 됐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외국에는 기증 사이트(www.locksolove.org)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엔 없었다. 종합병원이나
소아암협회 등 곳곳에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 봤지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아직은 국내에 모발 기증문화가 알려지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세브란스 병원이 흔쾌히 나섰다. 병원에 입원중인 소아암 환자에게 가발을 만들어 주자는 의견이었다. 김씨는 올해 2월 말에 1m가 넘는 생머리를 잘라냈고, 한 달이 지난 후 멋진 가발이 탄생했다. 가발업체인 하이모㈜가 김씨의 머리카락에 인조모를 더해 귀를 살짝 덮는 예쁜 단발머리로 만들어낸 것.
가발을 기증받은 정양은 지난해 11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중이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바람에 외출할 땐 모자를 쓸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시절이라 더욱 문제였다. 그렇다고 130만~300만원이나 하는 비싼 가발을 살 수도 없었다.
이날 정양은 ‘단발머리 소녀’ 모습으로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로부터 귀여운 머리핀도 선물받았다. 어머니 권혜원(40)씨는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시절이라 걱정했는데 정성이 담긴 가발을 선물받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항암치료가 끝난 후 예쁘게 머리를 기른 우빈이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며 “머리카락 기증문화가 활성화돼 소아암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 해소에 적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