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자금 과잉 유입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과다하게 유입된 자금은 원화 값을 실질가치 이상으로 끌어올려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국내 유동성 과잉의 원인으로 작용해 각종 자산 버블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국제수지 동향’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 때문에 국내로 유입된 자본이 50억4,000만 달러(약 5조원)를 넘어섰다. 이는 1980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이 가운데 39억 달러는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해외 채권 발행분이다.
3월에는 은행들의 해외 단기 자금 차입이 85억 달러까지 급증했다. 금융당국이 적극 개입에 나서면서 해외 단기자금 차입 규모는 4월 들어 한달 만에 5분의 1 수준인 17억 달러로 급감했다.
더구나 국내은행들은 24억원 순상환을 기록하기도 했다. 외국계 은행 지점들의 해외 단기자금 차입은 3월 70억 달러에서 지난달 30 억달러로 절반 이하 규모로 줄었지만, 절대규모에서는 여전히 최대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해외 차입이 막혀버리자 국내 은행들은 4월 들어 해외 채권 발행에 나섰다. 금융감독 당국이 외자 도입 통로를 막으면, 금융기관은 우회로를 찾아내는 양자간 숨바꼭질이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카드가 지난달 29일 영국 런던에서 4억 달러 무담보채권을 발행한 것을 비롯해 올들어 산업ㆍ하나ㆍ국민ㆍ우리은행과 수협, 농협, 신한카드 등 9개 금융기관과 KT, GS칼텍스, LG전자 등 3개 기업이 해외 채권을 발행했거나 발행이 확정됐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해외채 발행에 나서고 있는 것은 손쉽게 환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선물 환율이 현물 환율보다 낮은 상태가 지속되고 국내 금리 강세 현상이 이어지면서, 싼 금리로 해외에서 자금을 들여와 국내에서 원화로 대출하면 국내외간 금리차에다 미래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 금리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달러에 대한 원화 강세 추세도 쉽게 반전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 같은 재정거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과잉 유입되는 외화를 퍼내기 위해 해외투자 규제 완화 등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금융기관의 해외 차입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원화 가치의 과대평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 규제 같은 대증처방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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