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20분. 정기세일이라도 있는 날이면 백화점 앞은 부지런한 쇼핑객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고객이 차고 넘치니 10분 정도 먼저 문을 열어도 될법한데 개장시간은 1초의 에누리도 없다. 눈ㆍ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백화점 개장시간은 오전 10시30분이다.
불쾌하고 급한 맘을 꾹 누르고 개장에 맞춰 백화점에 들어서면 사정은 달라진다. 직원들의 꽃 같은 미소와 허리가 꺾일 정도의 공손한 인사 앞에 불평은 눈 녹듯 사라진다.
안면 근육이 다 풀리기도 전인 아침나절에 그토록 환한 웃음이라니. 과연 백화점 직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경비요원까지 세운 채 안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정답부터 말하면 세상이 자지러지도록 실컷 웃는다. 각 백화점은 개장 10분 전 다양한 아침 이벤트를 통해 출근 전쟁과 매장 정리로 지친 직원들의 웃음보를 터뜨려 놓는다. 고객에게 억지웃음 대신 진짜웃음을 선사하기 위한 일종의 '웃음 마케팅'인 셈이다.
현대백화점 부산점 직원들은 '기왓장 격파'를 한다. 과격해 보이지만 웃음 유발엔 효과 만점이라 남성 의류매장에서 시작된 기왓장 격파는 최근에는 여직원이 많은 화장품 매장에서 더 인기라고 한다. 다른 지점에선 무작위 팀별 노래자랑과 댄스타임, 마술공연 등 짧은 시간동안 한바탕 쇼가 펼쳐진다. 그래서 현대백화점의 웃음은 화끈하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백화점과 협력업체 직원이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서로를 꼭 껴안는 '프리허그'(Free Hug)를 실시한다. 따스한 체온으로 전해지는 정은 고객 앞에서 자연스런 웃음을 낳는다는 설명이다.
이에 비해 라이벌 신세계와 롯데백화점의 개장 10분전 상황은 차분하다. 두 곳 모두 자체 제작한 라디오방송으로 흥을 띄운다. 신나는 가요와 직원들의 경조사, 생일축하 방송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이다. 덧붙여 롯데는 에어로빅타임, 신세계는 유머잔치로 웃음을 붙잡아 둔다.
이쯤 되면 직원들 모두 웃음 100발 장전이다. 백화점 개장 전에 도착했다면 조급해 하지 말고 백화점 안 풍경을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자고로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 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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