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이 1962년 5월 3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2차대전 당시 450만~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이었던 그는 종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 자동차 기계공으로 숨어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돼 재판정에 섰다.
<전체주의의 기원> <폭력의 세기> 등의 저서로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가ㆍ비판자로 꼽히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아이히만 재판 소식을 듣고 강의를 취소한 채 미국 뉴요커 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 재판을 참관했다. 그의 참관기는 뉴요커에 5차례 기사로 게재됐고,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으로 간행됐다. 예루살렘의> 폭력의> 전체주의의>
아렌트는 여기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을 규정했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칸트의 도덕철학을 들먹이며 “명령받은 대로, 의무에 따라 행동했을 뿐, 비열한 동기나 악행이라는 의식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를 감정한 정신과 의사들은 그런 그의 정신상태를 정상이라고 판정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일상생활에서 아주 근면한 인간이고 무능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지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다”며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히 ‘생각의 무능성(thoughtlessness)’이었다”고 쓰고 있다.
개인적 발전을 추구하면서, 체제의 톱니바퀴로, 평범하게 살았던 아이히만. 아무리 거대한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도 그런 모습으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통찰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쉼없이 ‘악의 평범성’은 목격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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