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오기(傲氣)정치’가 다시 발동했다. 정치권과 언론 등이 정부 정책이나 대통령 리더십을 비판할 경우 ‘튀는 화법’으로 맞받아치면서 더욱 강하게 대응하는 정치 스타일이 되살아 났다는 뜻이다.
기자실 통폐합 조치와 관련 언론들이 일제히 반발하자 노 대통령은 기사송고실 전면 폐지 방안까지 꺼내면서 추가적 강공책을 예고했다.
노 대통령이 29일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터무니 없는 특권을 주장하면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고 한 발언이 그것이다. 마치 ‘내 의견에 반대하면 역으로 더 세게 나가겠다’고 윽박지르는 식이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 반대 여론이 거셀 경우 오히려 전선을 더 확대시키며 역공을 취하는 오기 정치 사례는 그동안 적지 않았다. 지난 달에는 개헌안 발의를 놓고 정치권의 반대로 국회 연설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국회 본청 앞 돌계단에서 연설문을 낭독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놓고 군 원로들을 비롯한 보수진영 중심의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전직 군 장성들을 겨냥해 ‘모독성’ 발언을 퍼부었다. 또 고건 전 총리가 자신을 폄하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했을 때도 노 대통령은 더욱 강도 높게 반격을 가했다.
정책 집행에 있어서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찬성하는 쪽이 소수라 하더라도 국가 전체를 위해 강력 추진해야 할 일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노 대통령이 언론과 정치권 등이 지적한 문제점에는 귀를 닫고 하고 싶은 말만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없는 사실을 부풀려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서도 노 대통령은 “일부 언론이 언론 탄압인양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 성향을 망라한 전 언론 매체가 이번 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도 노 대통령은 ‘일부 언론’만이 반대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또 “많은 선진국은 송고실이 없다”고 강변한 부분도 미국 영국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도 사실과는 크게 다르다. 개방형 브리핑제 아래의 열악한 취재 환경을 지적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아예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
한 사안에 대해 주장을 반복하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네 편과 내 편 간의 극단적 이분화 현상만 심화된다. 더구나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고, 반대 주장을 잘못된 행위로만 몰아붙이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내 주장만이 옳다’는 정치는 독선 정치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많다. 이 같은 오기 정치는 레임덕 현상을 막기위한 노 대통령의 의도된 행태라는 분석도 있다.
끝까지 정국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서 뉴스의 중심에 서 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편가르기에 나서는 것은 국민 화합을 추구해야 할 대통령의 역할로는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많다. 야당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런 정치 행태를 ‘협박 정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 발언
"언론이 계속 터무니없는 특권을 주장한다면 정부도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
(2007년 5월 29일 국무회의서, 기자실통폐합 조치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지자)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국회 정문 앞 계단에서라도 연설문을 읽겠다"
(4월, 개헌에 대해 정치권이 일제히 반대하자 개헌안 발의 연설을 하겠다며)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국방부 장관이오, 참모총장이오, 별들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것이냐"
(2006년 12월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서, 전직 군 장성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집단 반대하자)
"노무현이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흔들어라 이거지요, 흔들어라.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놈, 예 그렇게 됐습니다"
(12월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서, 전작권 환수반대 등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향해)
"정부에서는 검찰이 좀 센 편이고, 정부 바깥에서는 제일 센 것이 재계고, 그 다음이 언론이지 않나. (나는) 특권을 갖고 있는 집단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12월 부산지역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대통령의 대선 발언 등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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