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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가난하고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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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가난하고 어린

입력
2007.05.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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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어린 후배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무더운 오후 검은 양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원 영안실로 찾아갔다. 가난하고 어린 후배는 현재 한 초등학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가난하고 어린 후배의 어머님은 오랫동안 중풍을 앓았고, 자주 정신을 놓았으며, 결국은 그 때문에 돌아가시게 되었다. 가난하고 어린 후배를 만나기 전, 나는 병원 입구에 서서 지갑과 부의봉투를 양 손에 들고 한동안 고민해야 했다.

지갑엔 십만 사천 원이 들어 있었다. 나는 부의봉투에 오만 원을 넣었다가 다시 십만 원을 넣었다가, 다시 팔만 원만 넣었다가, 계속 그렇게 혼자 다투었다. 가난하고 어린 후배였기에 내 다툼은 더욱더 치졸해보였고, 치졸한 것을 잘 알면서도 계속 부의봉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나는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우선 부의봉투에 내 이름 석자를 크게 써넣었다.

써놓고 보니 그 이름이 더욱더 부끄러웠다. 자꾸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이름이었다. 망인을 기억하는 이름이 아닌, 산사람을 의식하는 이름이었다. 가난하고 어린, 그러면서도 애써 그것을 감추려 드는, 완강한 고딕체 이름 석자였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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