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매각 사건을 맡은 항소심 재판부가 에버랜드 전ㆍ현 사장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기존 주주들과의 공모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음에 따라 검찰의 대응이 주목된다.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허태학ㆍ박노빈 전ㆍ현 사장의 범행이 미리 주주들과 공모해야 성립하는 범죄"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검찰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에는 기존 주주들과 공모했다는 내용이 없다"며 그룹차원의 공모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법원이 '기소하지 않은 부분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불고불리(不告不理)의 원칙에 따라 이 사건의 가장 예민한 쟁점에 대한 판단을 비껴간 셈이다.
'큰 틀의 공모'에 대한 판단은 CB 저가 발행의 공범이 이건희 회장 등 그룹 최고위층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법원이 '공모'혐의를 인정했다면 검찰은 한국 최대기업의 경영인을 소환하는 데 따른 반대 여론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을 통해 '공범'임을 입증받지 못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공모 여부를 규명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
검찰은 2003년12월 에버랜드 전ㆍ현 사장을 기소한 이후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 등 중요 피고발인을 모두 조사했다.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 전무도 서면조사에 응했다. 이 회장이 33명의 피고발인 중 유일하게 조사하지 않은 인물이다.
검찰은 그동안"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해온 만큼 공모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구체적 수순을 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에버랜드 전ㆍ현직 대표에 대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끌어냄으로써 일단 이 회장 소환 조사의 역풍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업무상 배임 대신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함에 따라 단 하루 남았던 이 사건 공소시효는 3년이 연장된다. 검찰은 그 만큼 수사를 위한 시간을 벌었지만 이 회장에 대한 조사 방법과 기소 여부를 두고 사법적 정의와 경제적 고려 사이에서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