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록을 소재로 했지만 역사 소설이 안되게 하고 싶었다. 주인공 리진이 지금 이 시간, 우리 곁에서 숨쉬는 것처럼 표현하려 했다.”
소설가 신경숙(44)씨가 오랜만에 작품을 냈다. 단편집 <종소리> (2003)를 낸 지 4년 만에, 장편으로는 <바이올렛> (2001) 이후 6년 만에 낸 장편 <리진> (전 2권ㆍ문학동네)이다. 책 날개에 실린 작가 사진이 남편인 남진우 시인이 찍은 것이라 눈길을 끈다. 리진> 바이올렛> 종소리>
이번 작품을 구상한 것은 4년 전. 신씨는 한국외대 불레스텍스(2004년 작고) 교수로부터 2대 주한 프랑스공사 이포리트 프랑뎅의 1902년 회고록 속 조선 궁중 무희 ‘리진’에 대한 기록을 입수했다. 초
대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과 사실혼 관계를 맺고 파리로 갔다가 귀국, 도로 궁중 무희가 됐다가 자살한 이 여인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 작가는 집필하던 장편을 중단하고 역사 소설 장르에 첫 도전했다.
틈만 나면 파리로 건너갔지만 리진의 행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실망감으로 7, 8개월 간 아무 것 못쓰기도 했다는 작가는 “집필을 마치고 보니 차라리 사료가 없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특정한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봉건적 질서로부터 탈주하려던 리진의 자유 정신이 부각될 수 있었다는 것이 신씨의 자평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도 결국 현대소설”이란 생각으로 집필에 임했다고 한다.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도록 문체에 신경 썼고, 낯선 용어가 나와도 서너 문장 더 읽으면 자연스레 이해되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구한말을 작품배경으로 삼다 보니 고증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신씨는 “연도 하나를 쓸 때도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확인하고 허구적 요소와 긴밀히 맞물리도록 공들여야 했다”고 말한다.
리진이 프랑스에서 홍종우와 함께 ‘춘향전’을 번역했다거나, 주인공이 죽을 때 삼킨 ‘금종이’가 필사된 불한사전이었다는 내용 등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작가가 길어낸 역사적 상상이다.
원래 원고지 1,800매 분량으로 연재됐던 소설은 3개월의 꼼꼼한 퇴고를 거쳐 400매가 더 늘었다. 리진을 좀더 진보적이고 결단력있는 인물로 그리고, 묘사의 디테일을 풍부하게 살리는데 초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쓴 작품을 무사히 마치니까 스스로가 기특한 느낌”이라는 신씨는 여세를 몰아 이번 작품 쓰느라 접어뒀던 장편 완성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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