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월 29일은 지난 25일 97세로 별세한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 선생의 생일이다. 발인이 오늘이니, 금아는 자신이 세상을 처음 본 5월의 그 날에 세상을 떠난다. 오늘자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지난 24일 금아의 책을 내는 출판사로 전화를 했었다. 선생의 안부를 묻는 말에 출판사의 담당자는 "좀 안 좋으시기는 해도 큰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선생의 부고를 들었다.
<인연> 의 맨 처음에 실려 있는 글이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로 시작하는 저 유명한 '수필'이다. 인연>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나는 '수필'의 맨 마지막 부분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도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의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이 마지막 문장이야말로 금아의 표현대로 "하루하루를… 젖은 짚단 태우듯"(수필 '송년') 사는 우리 일상을 정화시켜 주는 금아 문장의 정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수필 '만년')라고 했던 금아. 선생의 평안한 영면을 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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