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사건 수사를 소홀히 했다가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경찰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 회복의 기회마저 놓쳐가고 있다.
이택순 경찰총장이 어제 전국 경찰지휘부회의에서 "우리가 수사할 수도 있었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었던 만큼 객관적인 처리를 위해 검찰에 수사를 맡기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장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만으로도 그는 자리를 유지할 능력과 권한을 이미 상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한화 김 회장의 어처구니없는 범법행위와 함께 경찰이 재벌과 조폭의 중간에서 '악의 고리'를 중개했다는 의혹이었다.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남대문경찰서로 이어진 수사관계자들이 자체 감찰을 전후로 중징계와 보직해임 등을 당한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은 의혹이 가시기는커녕 '경찰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검찰에 맞서 수사권 독립을 외치다 스스로 비위와 금품수수 의혹을 인정하고, '우리를 좀더 명백히 수사해 주세요'라고 검찰에 목을 내민 장본인이 이 청장인 셈이다.
그의 과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체 감찰을 훼방한 의혹이 있다. 한화측의 청탁성 전화에 대해 경찰 감사관실은 "시간이 없어 청장 관련 부분은 조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청장은 또 자신의 손과 발을 잘라내면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했고, 물러나는 사람들은 "관리의 책임이 있고 국민적 물의를 빚어서"라고 억울해 했다. 책임과 물의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청장 스스로 경찰 전체로부터 고발을 당한 꼴이다.
전ㆍ현직 경찰관, 소방, 해경 회원들이 '총경 이상 경찰간부들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단체행동의 저변에는 조직 내부의 알력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그들이 내놓은 주장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경찰간부 총사퇴'의 핵심은 결국 이 총장의 사퇴로 모아진다. 이후 검찰에서 맡게 될 후속수사의 핵심은 이 청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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