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이상 상품권 투자를 하면 4개월간 투자금의 135%를 돌려 드립니다." 상품권 판매업체 Y사 직원의 제안에 K씨는 솔깃했다. 음식점, 서점, 인터넷 쇼핑몰 등 가맹점 1,000여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라고 했다.
우수 가맹점이라고 소개해준 곳에 전화를 걸어 직접 확인해 보니 실제 유통이 된다는 답변. 투자 수익을 연 수익률로 환산해 보니 105%에 달했다. 1년만 투자를 하면 원금의 2배 이상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2월초 K씨는 Y사에 1억원을 투자했다. 4개월 뒤, 급전이 필요해 투자금 반환을 요청했지만 회사측은 미적거렸다. "재투자를 해서 투자액을 좀 더 불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답변 뿐이었다.
상품권 판매를 가장해 고수익을 보장하는 유사수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부분 연 100%가 넘는 수익을 보장하며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지만, 경찰의 늑장 수사로 피해액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9일 단기간에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상품권 판매를 가장해 유사수신 행위를 하고 있는 8개사를 적발, 경찰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경찰청에 통보한 3개 업체를 포함하면 올 들어 적발된 업체 수만 11개사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1,000~3,000여개 가맹점과 계약을 맺고 상품권이 유통된다고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하지만, 실제 상품권 유통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기자가 이번에 적발된 H사가 가맹점 계약을 맺고 있다고 밝힌 업체 20곳에 문의한 결과 상품권 사용이 가능하다고 답변한 업체는 7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13개사는 "받지 않는다" "직접 와서 상담을 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대신 이들 업체는 투자자들에게 상품권을 판매한 뒤 일정 기간 후 수익을 붙여 되사주는 방식으로 유사수신 행위를 일삼고 있다. 통상 3~5개월에 30% 안팎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어 연환산 수익률은 100%를 넘나든다.
초기 투자자들은 실제 이 같은 수익을 챙기기도 하지만 결국 재투자 유혹에 빠져 원금 회수가 불가능하다. 수천명의 투자자로부터 수백 억원에서 수천 억원까지 자금을 끌어 들인 뒤 잠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경찰의 늑장 수사가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올해 경찰에 통보한 11개 업체 중 H사 등 3개사는 이미 지난해 경찰에 통보됐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경찰이 수사를 미루는 사이 지속적으로 투자자금을 유치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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