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월 우리 나라의 대중 무역 흑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8%나 감소(52억6,700억달러)한 반면 대일 무역 적자는 20.5%나 증가(100억5,600만달러)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타개할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고민의 답을 찾는다면 꼭 만나야 할 최고경영자(CEO)가 바로 이영관(사진) 도레이새한 사장이다. 그는 1973년 제일합섬에 입사한 뒤 샌드위치 정도가 가장 심한 한국 화섬업계에서 무려 34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프로다. 99년 일본 도레이와 새한의 합작사인 도레이새한의 CEO로 임명된 그는 취임 3년만에 도레이새한을 300여억원의 적자 기업에서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킨 데 이어 다시 3년만에 폴리에스터를 주로 생산하던 화섬업체에서 정보기술(IT) 소재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이 사장은 먼저 한국 경제가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바심 버리고 더 큰 부가가치로 만들어 팔 줄 아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익률이 낮은 '레귤러'(범용) 제품은 갈수록 중국과 경쟁하기 힘든 만큼 차별화한 제품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는 것. 물론 이를 위해서는 끊임 없는 기술 개발과 함께 협력사간 '팀워크'가 뒷받침돼야만 한다. 그는 "일본 도레이는 특수한 실을 생산하게 되면 이를 그대로 파는 게 아니라 방직을 제일 잘하는 협력사로 보내 옷감으로 짠 뒤 이를 다시 염색을 제일 잘하는 협력사와 봉제를 제일 잘하는 협력사로 보내 가공해서 판다"며 "실로 팔 경우의 이익이 10이라면 염색과 봉제를 거쳐서 팔면 100도 되고 200도 되는 게 부가가치"라고 강조했다. 한국 화섬업체들도 스스로를 실만 파는 회사로 제한하지 말고 고객 입장에서 가장 편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사업 영역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이러한 상상력은 아예 업종을 전환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 사장은 2000년대 중국 화섬 업계의 성장세를 본 뒤 화섬 기업으로 남아있는 한 비전이 없다고 판단, 2002년 IT 소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우리나라에는 삼성 LG 같은 강한 세트 메이커가 있는 만큼 이들이 써야 할 IT 소재를 공급하게 되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도레이 본사를 설득, 자금을 마련한 이 사장은 과감한 시설 투자와 함께 산학 협력 및 해외 우수인력 확보 등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이제 도레이새한은 LCD나 PDP에 쓰이는 광학용 필름을 비롯한 디스플레이용 소재와 반도체용ㆍ배터리용 소재 등을 생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업체들에 공급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IT 분야 비중은 이미 30%를 넘고 있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도레이새한이 찾은 새 영역은 종업원들에게도 희망이 됐다. 이 사장은 "99년 원사 한 라인을 돌리는 데는 98명이 필요했었지만 이후 생산성을 높여 지금은 25명이면 모두 처리할 수 있다"며 "나머지 73명은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영역인 IT 분야에 배치함으로써 노사가 모두 '윈-윈'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아예 적진으로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듯 아예 중국에 진출, 중국안의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도레이새한이 최근 중국에 부직포 공장을 지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에선 최근 1회용 기저귀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4,000만명이나 되는 2세 이하 아기들이 1년에 무려 100억개의 1회용 기저귀를 쓴다는 것. 도레이새한은 1회용 기저귀를 만들 때 필수적인 부직포를 생산, 다국적기업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장은 최근 사업이 계속 커져 사무실을 내 주느라 사장실 면적이 4분의1로 줄었다. 그는 "작년에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며 "개인도, 회사도, 우리 경제도, 실패하더라도 변화를 위해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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