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힘들죠. 그래도 내 손으로 자식 공부시키는 보람으로 삽니다.”
27일 경기 파주시 교하면 신촌리의 한 종량제 비닐봉투 생산공장. 코를 찌르는 잉크냄새와 ‘우왕우왕’ 쉴새 없이 울려대는 가공기 틈바구니에 휠체어를 탄 김호식(50ㆍ지체장애 1급) 대리가 최종 생산된 비닐 봉투를 요리조리 돌려본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쳐내던 그는 “20년째 공장 일을 하고 있어 이젠 베테랑”이라며 “내년에 고등학생이 될 딸 학원비가 느는 게 슬슬 걱정된다”고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곳은 김씨와 같은 장애인 93명이 근무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에덴하우스’. 국가대표 유도선수로 활동하다 목뼈 골절사고로 장애인이 된 에덴복지재단 정덕환(61) 이사장이 1983년 설립했다. 전체 직원 125명 중 85%가 지체, 정신지체, 청각, 발달장애 등 중증 장애인이다. 이들은 압출실, 인쇄실, 가공실에서 일한다.
폴리에틸렌 원자재에서 비닐원단을 뽑아내는 압출실. 거대한 압출기 11대가 흰색, 노란색, 파란색 30㎏짜리 비닐원단을 둘둘 말며 24시간 쉼 없이 토해냈다. 인쇄기는 뽑힌 원단에 고속으로 글자를 프린트 해 가공실로 보낸다. 시끄러운 기계소음 한가운데서 인쇄기의 잉크와 동판을 갈고 있는 김한열(41ㆍ청각장애 2급)씨는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일할 수 있어 즐겁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지하 1층 가공실에서 일한다. 오순도순 얼굴을 맞대고 모여 앉은 이들은 인쇄기에서 넘어온 원단을 가공기가 일정한 크기로 접합ㆍ절단하면 10장씩 끊어 포장하는 역할을 한다. 빠른 손놀림으로 숙련된 일솜씨를 자랑하던 김현석(26ㆍ정신지체 3급)씨는 낯선 사람에게 포옹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한 달에 20만원씩 저축한다”며 “열심히 일해서 내년엔 꼭 결혼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들의 급여는 평균 87만원.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미래를 꿈꿀 수 있어 행복하다.
에덴하우스는 95년 서울시 쓰레기 종량제 비닐봉투 시범사업에 참여한 후 생산능력을 인정 받아 정식 납품업체로 선정됐다. 2~100ℓ짜리 종량제 비닐봉투를 하루 평균 40만~50만장씩 제작, 수도권 20여 지방자치단체에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액 67억원, 올해 목표는 80억이다. 에덴복지재단 정덕환 이사장은 "장애인도 가장으로 가정을 꾸릴 권리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행복추구권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에덴복지재단은 27~30일까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제행사 ‘2007 WI-Asia 연차총회 서울대회’를 처음으로 열었다. 이번 서울대회에선 WI(Workability International) 프랭크 플래너리 회장 등 140여명이 참석해 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촉구하는 서울선언문을 발표한다.
서영훈(85)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번 국제대회는 각국의 장애인 고용현황 등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문제 등을 재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WI는 세계 30여개국 300개 단체가 참가하는 장애인 직업재활을 위한 국제단체로 매년 300만명의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현정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