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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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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입력
2007.05.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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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장애가 될 태아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최근 ‘장애아 낙태 발언’으로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국내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을 즈음, 미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됐다. 이 전 시장은 장애아 낙태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었지만, 미국 쪽의 얘기는 반대로 장애아도 건강한 삶을 이끌 수 있으므로 태어날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美 장애아 부모의 낙태 반대

미국 쪽의 주장은 다운증후군 장애아 부모들이 이끌었다. 이들은 미국 산부인과의사회가 지난 1월 지금까지 35세 이상 임부만을 대상으로 했던 태아 염색체 이상 검사를 모든 연령의 임부에게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 진료지침을 내놓자 ‘행동’에 들어갔다. 새 지침은 장애아 출산을 ‘예방’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장애아의 ‘태어날 권리’를 짓밟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이들은 지난 16일 디트로이트 헨리포드병원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 다운증후군 장애소녀 사라 이토(12)를 단상에 세웠다. 이토는 수많은 임신상담원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참석한 행사장에서 “책읽기를 좋아하고 산수도 점점 잘하고 있다, 학교 밴드부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방청소도 잘 한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이토는 “나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지만 문제가 없다는 것을 여기 계신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 이 전 시장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자식의 장애로 정작 평생의 큰 짐을 지고 살아가는 부모들이 오히려 자신 있게 ‘장애아 낙태 반대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미국과, 대선주자조차 장애인 낙태를 공개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도록 하는 한국의 차이를 되짚어 보고 싶은 것이다.

미국은 뉴욕 한 가운데에서도 장애인이 타고 내리면 시내버스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천천히 장애인을 돕는 나라다. 뇌성마비 장애아가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급 보조교사와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당연히 붙어 그 어린이의 이동과 식사, 화장실 가고 오는 것까지 챙겨주는 나라다.

우리는 어떤가. 장애인 시설이라도 들어올라 치면 온 동네가 나서서 반대운동을 하느라 구청이 떠들썩한 나라다. 장애인은 버스나 택시를 탈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나라다. 뇌성마비 등 중증 장애아들은 사고력이 정상이라도 다닐 학교조차 없이 초등과정의 재활학교를 마친 후에는 집에 유폐될 수밖에 없다.

●윤리논쟁보다 지원책이 절실

이 전 시장이 낙태에 대해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하자, 정치적 경쟁자들은 별안간 ‘태어날 권리’의 옹호자가 되었다.

장애아 낙태를 ‘불가피한 것’이라는 이 전 시장의 인식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태어날 권리’의 옹호자들은 평소에 장애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대선주자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장애아 학부모들 무료 주차시설 확보하라. 서울에 번듯한 장애아 교육시설 5개만 더 만들라.

장인철 뉴욕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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