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일기와 서간문, 감상문, 기행문 등 광범위한 글을 포함한다. 붓 가는대로 쓰여지기 때문인지, 그 형식도 다양하게 분류된다. 지적ㆍ논리적 성격의 에세이와 감상적ㆍ정서적 특성의 미셀러니로 구분된다. 또한 중수필과 경수필, 사색적 수필, 비평적 수필, 스케치 수필, 개인수필, 성격소묘수필, 사설수필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열기가 식었지만, 한때 우리 문단에서도 많은 수필가들이 좋은 수필을 남겼다. <청춘예찬> 의 민태원과 <페이터의 산문> 의 이양하, <낙엽을 태우면서> 의 이효석, <체루송> 의 김진섭 등이다. 체루송> 낙엽을> 페이터의> 청춘예찬>
▲ 수필가 중 특히 대조적인 사람은 피천득과 이상이었던 것 같다. 피천득의 <수필> 이라는 수필은 우아하고 격조 있는 언어로 엮은 진주 목걸이 같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오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 이상의 대표적 수필은 <권태> 다. 피천득의 글과는 대조적으로 격조를 벗어 던진 채, 끈끈한 해학과 날카롭고 냉소적인 위트로 가득하다. ‘어서 차라리 어둬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권태>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고?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그가 잠시 만주에 측량기사로 가 있던 27세 때 쓴 수필이다.
▲ 같이 1910년에 태어난 이들의 죽음도 대조적이다. 이상은 <권태> 를 쓰던 해에 일본에서 불령선인으로 취급되어 죽음을 맞고, 피천득 선생은 그보다 70년을 더 살고 25일 타계했다. 이상의 죽음은 비감을 주지만, 피 선생의 경우는 불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권태>
수필 속에 숨어 있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을 마음껏 음미한 듯한 피 선생의 삶은, 오히려 축복 받은 삶이었다고 여겨진다. 다만, 수필문학에 마음껏 열정을 바쳤던 첫 세대이자 마지막 세대가 떠나가는 듯한 아쉬움은 남는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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