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빛의 화가, 모네> 전시를 앞두고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모네의 자취를 찾아 보았다. 그가 86년 생애의 후반 43년을 산 파리 교외 지베르니의 집과 정원, 세계에서 모네 작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파리의 마르모탕 미술관, 모네 최후의 걸작인 대형 수련 연작이 있는 모네 예술의 성소, 오랑주리 미술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빛의>
◆마르모탕 미술관
파리 서쪽 블로뉴 숲 어귀에 있는 마르모탕 미술관은 세계에서 모네 작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곳이다. 지하철 9호선 라 뮈에트 역에서 내려 1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은 미술관이 문을 여는 아침 10시가 되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
본래 개인 주택이던 이 미술관은 1932년 폴 마르모탕이 이 집과 나폴레옹 시대 회화 등 미술품을 프랑스 국립 미술 아카데미에 기증하면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그 뒤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여러 명의 기증으로 모네와 인상주의 작품 200여 점, 중세 미술 200여 점을 갖게 됐다.
모네가 이 미술관의 핵심이 된 것은 1966년, 모네의 아들 미셸이 집안에 남아있던 모네의 작품과 유품을 몽땅 기증하면서부터. 미셸은 모네의 유화 80점과 파스텔화, 드로잉, 인물 캐리커쳐, 스케치북과 팔레트 등을 기증했다.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나오게 만든 모네의 유명한 그림 <인상 - 해돋이> (1873)도 여기에 있다. 미셸에 앞서 1957년 빅토린 도노 드 몽시가 기증한 인상주의 회화 컬렉션 중 하나인 이 작품은 해외 나들이가 금지돼 있다. 인상>
모네 전시실은 지하에 있다. <인상, 해돋이> 를 비롯해 파리에서 가장 오래 된 기차역인 생 라자르 역, 센 강변, 노르망디 해안, 런던의 국회의사당과 차링크로스 다리, 수련 연작과 지베르니 정원을 그린 그림을 전시 중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대기, 물의 미묘한 조응과 변주를 끈질기게 탐구한 모네의 열정을 실감케 하는 작품들이다. <런던, 국회의사당> (1900-1901)에서 노을에 젖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템즈강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실제로 눈이 부신 듯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된다. 런던,> 인상,>
백내장으로 고생하던 말년에 그린, 일본풍 다리가 있는 지베르니의 연못 풍경은 색채가 붉은 갈색조로 어두워지고 형체는 뭉개진 채 불꽃처럼 꿈틀대는 격렬한 붓질이 화폭을 내달려 거의 추상에 가까워진다. 이 그림들은 모네 사후 30년 만에 미국에서 등장한 잭슨 폴록, 조안 미첼 등의 추상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랑주리 미술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틀 뒤인 1918년 11월 11일, 당시 78세의 모네는 프랑스의 승리를 축하하는 애국심의 표시로 작업 중인 대형 <수련> 연작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힌다. <수련> 연작은 모네가 생애 마지막 30년을 송두리째 바친, 모네 예술 최후의 결정판이다. 이 작품들만 전시할 특별한 공간을 원한 모네의 요구에 따라 파리 시내 튈르리 공원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유리 천장에서 햇빛이 쏟아지는 2개의 타원형 방이 만들어졌다. 모네는 높이 각 2m, 폭 8~16m에 이르는 초대형 <수련> 연작 8점을 기증했고, 이 작품들은 모네가 죽은 이듬해인 1927년 대중에 공개됐다. 수련> 수련> 수련>
오랑주리미술관의 <수련> 연작은 워낙 커서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모네의 나이 80세부터 죽을 때까지 6년 동안 그린 것임을 알고 나면 놀랍기도 하다. 나란히 붙여놓으면 총길이 91m나 되는 이 작품은 타원형 벽을 따라 바닥 가까이 낮게 걸려 있어, 보고 있노라면 연못의 수면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지극한 고요와 명상이 그 안에 있다. 첫 번째 방에는 청명한 아침의 연못이, 두 번째 방에는 땅거미 질 무렵의 연못이 펼쳐진다. 수련은 꿈꾸듯 떠있고, 하늘과 구름이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친다. 수련>
이 작품들은 수련이 아니라 수련이 있는 물의 풍경에 방점을 찍고 있다. 모네 자신이 ‘뒤집힌 풍경’이라고 불렀던 이 그림들은, 단순한 연못 풍경이 아니라 한 예술가가 발견한 우주의 지평을 보여준다. 물과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이 사라진 채 수면 자체가 주인공이 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만큼 방대하고 광활한 이 세계 앞에서는 절로 옷깃을 여밀 수 밖에 없다. 화가 앙드레 마송이 ‘인상주의 미술의 시스티나 성당’으로 부른 이 곳은, 모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반드시 들르는 성소가 됐다.
오랑주리미술관은 6년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5월 재개관했다. 1960년, 월터 기욤이 기증한 인상주의 회화를 전시하기 위해 모네의 수련이 있는 방 위로 한 층을 더 올리는 바람에 막혔던 자연 채광을 되찾기 위한 공사였다. 기욤의 수집품은 지하로 내려갔다. 다시 햇빛을 만나게 된 수련들은, 모네가 원했던 대로 시간의 흐름과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을 얻었다. 모네는 틀림없이 기뻐했으리라. 미술관 직원에게 물어보니 재개관 이후 1년 간 50만 명의 관객이 입장했다고 한다.
◆지베르니 : 모네의 집과 정원
모네는 40세가 될 때까지 가난했고, 센 강을 따라 계속 거처를 옮겼다. 돈이 없어서, 또 더 나은 풍경을 찾아서 떠돌던 모네는 43세 때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5km 떨어진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한다.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43년 간 이 곳에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연못을 파서 수련을 키우며 그림을 그렸다. <노적가리> <포플러> <대성당> 등 연작과 모네 예술을 대표하는 <수련> 연작이 여기서 태어났다. 수련> 대성당> 포플러> 노적가리>
파리 북부 생 라자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르농까지, 거기서 다시 버스로 20분을 가면 지베르니가 나온다. 기차는 센 강을 따라 달린다. 좌우로 푸른 옥수수밭과 보리밭, 낮은 구릉이 펼쳐지고 바람에 하늘대는 들꽃이 따라온다. 지베르니는 아름답다. 그 중에도 모네의 집과 정원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한 뒤부터 경제적으로 안정이 됐고, 말년에는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작품 값도 천정 부지로 뛰어 정원사를 5명이나 둘 만큼 부자가 됐다. 모네의 집은 분홍색 벽에 초록 덧문을 달고 있는 2층 건물이다. 주방과 침실, 서재 등이 모네가 살던 시절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모네의 그림은 없다. 원본은 미술관에 있고, 지베르니에는 복제본만 있다.
정원은 꽃과 물, 두 세계로 이뤄져 있다. 마당에는 모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붓꽃과 장미, 원추리 외에 작약, 다알리아, 팬지, 패랭이, 양귀비 등 수많은 꽃이 햇빛 아래 춤을 춘다. 모네는 정열적으로 진귀한 식물을 모았고, 꽃의 색깔과 피는 시기까지 따져서 정원에 색색깔 빛의 팔레트를 만들었다. 길을 잃고 싶어질 만큼 찬란한 빛과 색채의 향연이다.
물의 정원, 연못은 모네가 지베르니로 와서 10년 뒤에 팠다. 당시 일본 전통판화에 매료됐던 모네는 연못에 일본풍 둥근 다리를 놓고 주변에 대나무와 수양 버드나무 등을 심었다. 연못 가에 서면, 모네의 <수련> 과 지베르니 정원 풍경 그림에서와 같은 정경을 볼 수 있다. 한낮의 나른한 햇빛은 수면에 백일몽 같은 환상을 문지르고, 점점이 뜬 수련은 작은 보석처럼 빛난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의 그림자는 수면에 비친 하늘과 구름 사이로 나부낀다. 수련>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그린 정원 그림은 350여 점, 그 중 <수련> 이 200여 점이나 된다. <수련> 연작 중에도 40여 점은 크기가 3m가 넘는 대작들이다. 연못을 파고 수련을 키우면서부터 모네는 더 이상 다른 소재를 찾지 않았다. 평생 탐구한 빛과 물과 대기의 세계가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수련> 수련>
모네의 집과 정원은 1980년 기념관으로 문을 열어 일반에 공개됐다. 꽃이 없는 계절을 뺀 1년 중 7개월 간 해마다 전세계에서 50만 명이 이 곳을 찾는다.
파리=글ㆍ사진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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