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충북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내 야외 음악당. 백발이 성성한 200여명의 노인들이 구수한 트롯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선사하고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니 가수가 아니고 평범한 50대 아줌마다. 주민 장영희(56ㆍ음성읍 읍내리)씨다. 장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1시간 넘게 트롯공연을 하더니, 조그만 트럭에 싣고
온 국수와 과일을 노인들에게 대접했다. 이런 노인 위문공연을 15년째 벌이고 있는 그는 “웃어른들에게 잘 해드리고 싶은데…내가 할 수 있는 건 식당을 하면서 익힌 음식 솜씨와 취미인 노래 부르기 뿐이라…”며 계면쩍게 웃었다.
그가 노인들 모시기에 앞장서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가 이혼하는 아픔을 겪은 그는 “부모님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 드렸다”고 깊이 후회했다. 속죄하는 마음에서 친정 부모님은 물론 이웃 노인들까지 정성껏 모시기 시작했다. 우유배달원, 파출부 등 갖은 고생 끝에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자 그는 1992년 1,500만원을 들여 1톤 트럭을 구입했다. 여기에 음향기기와 조명장비를 갖추고 음성, 충주지역 양로원 노인정을 돌며 위문 공연을 본격화했다. 불고기, 국수 등 노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마련도 빼놓지 않았다. 매주 1,2차례 계속된 공연이 15년을 맞으면서 지난 달 1,000회를 돌파했다.
음성군 원남면의 한 공장 구내식당을 운영중인 그는 요즘 음성지역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노래교실을 다니고 있다. 노인들에게 트롯 신곡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그는 “요즘 어른들은 옛날 노래보다 설운도, 송대관의 신곡을 더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모두 출가한 4남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으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라는 장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외로운 노인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음성=글ㆍ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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