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밤 97세를 일기로 타계한 금아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은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고인의 일생처럼 차분한 분위기였다. ‘국민 수필가’라는 명성을 반영하듯 후배 문인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빈소에는 그가 평소에 사랑했던 장미꽃에 둘러 쌓여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있는 고인의 흑백 영정 사진이 놓여졌고, 수필집 <인연> , 시집 <생명> <꽃시와 도둑> , 번역 시집 <세익스피어 소네트> <내가 사랑하는 시> 등으로 구성된 그의 전집과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라는 문구,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이 적힌 위패가 모셔졌다. 내가> 세익스피어> 꽃시와> 생명> 인연>
27일 낮 빈소를 찾은 소설가 박완서씨는 “선생은 항상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참된 것, 정직한 것, 선한 것을 추구했다”며 “비록 많은 작품을 남기시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 두고두고 읽고 또 읽을 수 있는, 마음을 위로하고 정화해 주는 글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 고인에게 배운 시인 황동규씨는 부인 고정자씨와 함께 빈소를 찾아 “글도 아름답고 인간도 아름답다.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있는 분이셨다”며 “이제 세배 드릴 분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1960년대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며 고인과 인연을 맺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훌륭한 글을 통해 맑고 행복하게 사신 분”이라며 “정치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보통 사람’으로 성공한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빈소를 찾아 “문단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세상을 떠나신 분”이라며 “총장 재직 시절 제 손을 꼭 잡으시며 ‘앞으로 더 잘하라’ 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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