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정 칼날이 경찰을 겨누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한 경찰을 향한 검찰의 이번 사정은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과거 검찰은 자체 수집한 정보나 청와대의 하명 등에 따라 경찰 비리를 파헤쳐왔다.
그러나 이번엔 경찰 스스로가 자기 조직의 의혹을 밝혀주도록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권 독립 문제로 검찰에 날을 세워온 경찰로서는 굴욕으로 비춰질 수 있는 조치였다. 청와대의 뜻이 개입된 것이긴 하지만 경찰 수뇌부의 수사의뢰 결정은 그만큼 파격적이다. 검찰 주변에선 수사 착수가 파격적이었던 만큼 결과물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경찰이 25일 김 회장 폭행사건 수사 라인에 대한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대상자는 사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서울남대문서로 넘기도록 지시한 김학배 서울청 전 수사부장(경무관)과 장희곤 전 남대문서 서장(총경)이다. 한화그룹측으로부터의 금품수수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금품수수 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들에게는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외에 뇌물수수나 알선수재, 알선수뢰 등 혐의가 더해진다.
하지만 이 두 명만이 검찰 수사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경찰 내부 감찰 결과로도 서울경찰청의 홍영기 전 청장, 김 전 수사부장, 한기민 형사과장과 남대문서의 장 전 서장, 강대원 전 수사과장이 한화측과 직ㆍ간접으로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일단 한화측 로비스트로 지목된 최기문 전 경찰청장(한화그룹 고문)의 로비 내용과 실제 효과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전망이다. 남대문서로 사건이 넘겨지고 남대문서가 한달 동안이나 사건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사건 처리 과정이 로비의 결과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질 경우 관련자들은 모두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워진다. 최 전 청장에게는 변호사법 위반이나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고 경찰 관계자들은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 혐의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최종 타깃은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모아질 가능성이 크다. 경찰의 감찰에서는 이 청장 등 경찰청 본청 관계자들이 한명도 거명되지 않아 경찰 감찰 자체에 대한 회의 여론이 일고 있는 상태다. 경찰은 최 전 청장과 이 청장 사이에 통화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다른 선을 통해 이들이 만났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 청장이 최 전 청장이 아닌 다른 한화측 인사와 접촉한 사실 등이 드러날 경우 경찰총수의 검찰 소환은 불가피해진다.
경찰로서는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경우다. 경찰 관계자들의 사법처리도 문제지만 “경찰은 아직도 돈 받고 사건을 무마해주는 곳”이라는 국민의 눈총을 더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미지 쇄신에 쏟은 그 동안의 노력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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