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남과 드러냄 / 김정환 지음 / 강 발행ㆍ368쪽ㆍ1만5,000원
지난해 김정환(53) 시인은 11년 간 맡아왔던 한국문학학교 교장직에서 물러났다. “남들에 비해 다소 잡다했던 공공의 비용을 완전히 벗은” 셈이다. 그 안도감이 마음 뒤란에 있던 창작열에 불을 지핀 걸까.
집필 개시 두 달 만에 장편소설만큼 두툼한 시집을 내놨다. 2권 5부의 거창한 뼈대를 세운 시인은 6,000번이 넘는 행갈이를 거듭하며 공생애 25년 동안 기억에 켜켜이 쌓인 “잠재들에 총체틀을 입혀보려 노력”했다.
계기는 졸업 앨범이었다. 작년 모교(보성고)의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돕다가 시인은 1972년 앨범 속 빛바랜 흑백 사진의 동창들과 조우한다. 그들은 “감각이 이성보다 총체적인 지점들처럼 / … 도열해 있다.”(<교무와 담임> ) 망각과 기억이 구분되지 않은 채 34년 전의 얼굴들은 “감각=총체”(<3학년2반-조용히 열심히>)를 통해 하나의 투명한 실체로 다가왔다. 미분도 적분도 될 수 없는 시공간에 걸맞은, “세상을 한꺼번에 동시에 느껴 깨닫는”( <등교와 교훈> ) 감각의 충만이다. 등교와> 교무와>
시인은 내처 69년 중학교 졸업 앨범을 들여다본다. 하여 그는 “수십 년을 더 / 늙어버렸”는데 그건 그가 “졸업앨범의 눈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돈오의 혜안(慧眼) 속에서 전생과 후생은 “빛의 속도를 닮아” 맹렬히 겹치고, 급기야 시인은 “삼위일체의 삼위일체가 보인다, 아니 들”리는 경지에 다다른다. (이상 <그 전과 그 후> ) 그>
‘감각=총체’의 안목을 얻은 시인의 감각은 폭발한다. 시는 1권 <졸업앨범> 을 마무리 짓기 무섭게 <오래된 나들이> 라는 표제의 2권으로 달려간다. 과거에서 현재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시인은 체 게바라 사진을 응시한다. 이 고매한 혁명가의 사진 속 숫자는 “정말 / 여럿을 아는 숫자”요, 금속은 “단순함을 심화하는 / 금속의 상상력이다. 오래된> 졸업앨범>
”(<체 게바라 사진> ) 이처럼 의미는 응축되고 중첩된다. 감각의 미래는 응당 “가장 총체적으로 세계를 전유”해야 하며 그것은 “몸=총체의 무용 / 이야기=몸의 연극 / 사회=몸의 문학”으로 구현될 것이라 시인은 설파한다.(이상 <감각의 미래> ) 감각의> 체>
1권에 비해 산문성을 한결 덜어낸 2권에서 시인은 ‘감각=총체’로 삶을 영위하는 ‘일상의 심화’를 추구한다. 평론가 황광수씨는 “시인이 ‘일상이 일상인 채로 난해를 감당하는 / 명징성’이라 말할 때 그것은 세속의 잡다함과 복잡함을 기꺼이 감당한다는 뜻이며, 명징성이란 분석이나 귀납의 매개없이 일상의 숭고함에 도달한다는 의미”라고 해설한다.
쾌(快)하게 달려온 시편의 막바지, 시인은 기어코 절창한다. “늘 집에서 빈둥대는 나는 아내의 퇴근이 나의 // 귀가 같다.… 죽음은 ‘그러나’도 // ‘그리고’도 없는 잡무라고 생각한다.”(<실업의 잡무> ) 실업의>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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