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의 생활사 /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휴머니스트 발행ㆍ492쪽ㆍ2만2,000원
고려(918∼1392) 도읍 개경(개성)은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60㎞ 남짓한 가까운 곳에 위치하지만, 국사 교과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뿐 분단 현실과 맞물려 역사 도시로서 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 경제 종교 문화재 등의 영역에서 남북교류가 이뤄지면서 개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개성공단에서는 이미 북한 주민이 남한 기업체의 근로자로 일하고 있고 지난 주 시험 운행한 남북열차의 북쪽 종착지도 개성이었다. 고려시대 왕궁 터인 개성 만월대 주변의 공동발굴을 위해 남북이 첫 삽을 뜨기도 했다.
<개경의 생활사> 는 1,000년 전 고려 왕조의 도읍 개경을 재발견 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박종진 숙명여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된 한국역사연구회가 왕족에서부터 관료, 노비, 승려에 이르는 다양한 개경 사람들의 삶을 통해 고려 사회와 문화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당시 정치, 경제의 중심이었던 개경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와 유사한 점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외국어 공부이다. 고려와 몽골의 강화 이후,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자 고려에서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북방 한어(漢語)가 지배층의 필수 교양이 되었다. 당시 천하를 통일한 원나라 언어는 쓰임새가 많을 것이란 생각이 퍼지면서 조기 외국어 교육과 유학이 유행했다. 국가가 양성한, 설인(舌人)이라는 역관도 다수 등장한다.
고려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신분제 사회였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비교적 높았다. 축첩제의 제도화에 앞장 선 대신을 비판하고 재가여성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했다.
일례로 명종 때 감찰어사를 지낸 이승장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재가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재혼한 남편이 아들에게 학업을 그만 두고 가업을 잇도록 하자 “이 아이를 공부시키지 못하면 지하에서 전 남편을 무슨 낯으로 볼 수 있겠냐”며 설득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여성의 위상과 뜨거운 교육열을 보여준다.
벽란도 무역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 받았던 상인, 권력층의 수족 노릇을 하다 권력의 실세로 대두한 노비, 전국의 명사찰을 순례하며 자유롭게 신앙생활에 열중한 여성의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남존여비, 사농공상 등으로 대변되는 중세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연하게 한다.
이 책이 주는 쏠쏠한 재미는 개경인의 생활 속에서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고려 사회의 흔적을 만나는 것이다. 책 말미에 수록된 3박 4일 개성 답사기는 개경의 현재를 보여주는 하나의 덤이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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