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 일본 언론은 "삼성전자 쇼크가 열도를 강타했다"고 야단을 떨었다. 삼성전자가 전년도에 마쓰시타 소니 등 일본 10대 전기ㆍ전자 업체의 순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배 이상 많은 순익을 내 세계적 기업들이 선망하는 '순익 100억달러 클럽'의 9번째 멤버가 됐다는 뉴스가 나와서다.
일본 언론은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신속한 결단력 아래 반도체와 LCD 등에 경영자원을 집중 투자한 것이 놀라운 실적의 비결"이라고 분석한 뒤 위험을 두려워하며 투자를 게을리한 일본 기업들을 맹렬하게 질타했다.
2년 여가 지난 지금 일본에서 그 기사는 '박물관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신 전후 최장기 호황이 이어지면서 기업실적과 경상수지의 최고치 경신 행진이 계속되고, 젊은 층 일자리가 넘쳐 난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룬다.
역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쿨한 브랜드'로 대접 받던 삼성전자 주주와 임직원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수익구조의 변동성이 심해 1년 만에 '100억달러 클럽'에서 밀려나고 지난해 장사 역시 별로 재미를 못 본 데 이어 올 1분기 영업실적마저 4년 만에 최저를 기록한 까닭이다.
● '주가 파티의 불청객'수모
얼마 전 청와대는 종합주가지수가 1600을 넘자 "참여정부가 경제ㆍ사회ㆍ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거둔 정책적 성과를 시장이 인정한 결과"라며 우리 경제와 증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한국의 간판기업이자 증시의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이 파티에 초청 받지 못했다. 올 초 1400대 초반이던 주가지수가 최근 1600대 중반으로 접어든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오히려 10% 가까이 떨어지는 수모를 겪고 있다.
주가에서 정권의 업적을 찾는 것이 무모하고 뜬금 없듯이, 조수간만처럼 변화무쌍한 주가를 잣대로 기업을 재단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삼성전자에 10년만 묻어두면 큰 돈이 된다'던 투자자의 절대적 믿음이 흔들리고, 시장주도주의 위상을 의심하는 눈이 많아진다면, 그것은 '사건'이다.
이 사건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이제 과감히 삼성전자에 대한 신화적 미련을 버리고 경영전략, 시장전략, 지배구조 등의 본질적 문제를 냉철하게 따져볼 때"라는 말이 시장 전문가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연간 매출이 국가 총예산의 4분의 1에 이르고 여전히 한해 7~8조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에 왜 딴지를 거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없는 한국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주주와 임직원들의 눈은 한층 날카롭고 귀는 더욱 열려야 한다. 기업설명회(IR)를 맡은 사람들의 희망적 하반기 전망과 달리, 분석가들이 '시장의 계륵'으로 여기는 삼성전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점에서 삼성전자가 최근 원가 절감을 위해 국내외 원자재 구입처를 대폭 변경하고,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해외 경쟁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확대하는 것은 진일보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시장의 변심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 반도체 LCD 휴대폰 등 주력품목 모두가 상어떼 득실거리는 '레드 오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나름대로 새 사업을 모색한 결과가 이러니, 앞으로 환경은 더욱 험난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4~5년 뒤 나라경제의 혼란을 우려하며 정신 재무장론을 강조할 만도 하다.
● 혁신 못하면 골목대장 전락
결국 초점은 수익성보다 위험성이 더 크게 부각된 사업구조를 어떻게 새로 짜느냐에 모아진다. 이 과정에서 지배구조의 효율성과 취약성을 재점검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교과서적 원칙론을 앞세우는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동조해서가 아니라, '고민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라고 해도 세월이 지나면 이끼가 끼고 활력이 떨어지게 마련인 까닭이다. 또 주요 설비와 부품ㆍ소재의 대일 의존성이 10년 이상 거의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를 따져보면서 협력ㆍ하청업체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전자의 부활을 위해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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