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진실 / 데이비드 우튼 지음ㆍ윤미경 옮김 / 마티 발행ㆍ392쪽ㆍ1만6,000원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 이 큰 반향을 일으킨 이후 의학 관련 서적의 출간이 부쩍 늘었다. <하얀 거탑> 이 높고 두터운 장벽 속에 감춰져 있던 병원과 의사 세계의 이면을 비췄다면, 영국 요크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의학의 진실> 은 서양 의학의 역사에 메스를 들이댄 책이다. 의학의> 하얀> 하얀>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의학의 역사를 조망한 저자는 최소한 2,300년간의 의학은 ‘나쁜 의학’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1865년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이론이 정립되기 전까지 질병을 치료한다는 의미에서의 의학은 없었으며 그 전까지 모든 의학은 나쁜 의학, 즉 이로움보다 해악이 훨씬 더 많은 의학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의사들은 전통과 권위에 대한 맹신으로 진보의 속도를 늦췄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은 피를 뽑고 토하고 설사를 하게 하는 방법을 거의 모든 질병의 치료법으로 자리잡게 했으며 의사들은 항문에서 나는 피를 건강의 징표로 여겼다. 전염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도선을 도려내는 수술을 마구잡이로 한 것이 불과 몇 십년 전의 일이다.
저자는 의학사는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단절과 지연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진보를 가로막고 지연시킨 것은 다름아닌 의사들이라고 말한다. 이를 뚜렷이 드러내주는 것이 망원경과 현미경이다.
망원경과 현미경은 17세기 중반에 나란히 발명됐다. 망원경은 천체 관측에 곧바로 사용돼 천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현미경은 달랐다. 의사들의 외면으로 인해 현미경이 의학으로 연결되기까지는 150년의 시간이 걸렸다.
방부 외과수술을 처음으로 도입한 조지프 리스터는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스퇴르의 세균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드높았던 파스퇴르의 이름은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권위였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1880년대에 처음으로 환자를 치료했지만, 다음 치료가 이뤄진 것은 1940년대였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1950년대에 제시됐음에도 의사들은 이후 30년간 흡연의 중독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자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의학의 발전보다는 영양과 위생의 개선 때문이며, 우리는 근대 의학에 생각만큼 빚지고 있지 않다고 신랄하게 말한다.
책의 원제는 이며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이후로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원제에 비해 한층 부드럽고 간접적으로 옮겨진 제목 역시 의학계의 높은 권위와 무관하지 않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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