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의 한 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A씨(31)는 “강의실에 들어가면 동료 중국 학생들이 수업은 안중에도 없고 컴퓨터를 켜고 주식을 거래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주식 열풍을 드러내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 1년 반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 열풍이 급기야 중국인들의 생활 패턴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택시를 타면 교통방송이 나오지 않고 주식 관련 소식을 전해주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기 일쑤이다. 택시기사 천(陳)모씨는 “주식에 조금 돈을 넣었는데 조바심이 나서 주식 방송을 듣는다”고 말했다. 시장 좌판에서도 주식 관련 경제지를 읽은 이들이 적지않다.
여성잡지들도 앞다퉈 주식 관련 코너를 신설하고 있다. 한 잡지는 ‘패션 옷을 고르듯 주식을 고르는 방법’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주식 관련 소식과 정보를 담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파트너 구하는 통로로 이용돼 온 한 대학의 동문 게시판은 증시관련 정보를 주고 받는 채팅 마당이 돼버렸다. 주식에 투자한 한 대학생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국제뉴스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는 주식과 관련한 국내뉴스, 특히 경제뉴스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생활의 목표가 주식에 맞춰지면서 생활 패턴 자체가 바뀌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생활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신조어가 ‘9ㆍ3족(族)’이다.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활기를 띠다가 장이 끝나면 시무룩해지고 내일의 증시가 열리기를 학수고대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베이징, 상하이(上海) 등 중국 10대 도시의 경우 성인의 40% 가량이 주식에 손을 대고 있다. 2005년 연초 대비 250% 폭등한 증시 광풍에 휩싸인 것이다. 8월이면 중국 증시 개인투자가가 1억명을 넘는다. 중국신문망이 24일 “주식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메신저를 개통하고, 주부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식 강좌를 듣는 등 ‘전 인민의 주식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국 증시는 돈 있는 부유층과 중산층은 물론 지갑이 가벼운 저소득층의 돈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폭등 장세가 멈출 경우 어떤 결과를 낳을 지 아무도 모른다. 수십~수백%의 주가 이익을 경험한 중국인들이 다시 연리 3, 4%에 만족해 은행 저축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주식 거품이 꺼질 경우 얼마 만큼 경제적 손해를 입을 것인지, 심리적 타격과 공황 정도는 어느 정도일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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