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낸 세금이 과연 정당하게 쓰이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연말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헤치는 일은 앞으로 없어져야지요.”
“그렇게 정공법으로 접근해서 어디 눈길을 끌겠어요?”
“그러지 말고 ‘돈으로 대통령을 사겠다’는 공약을 내거세요. 비틀어 표현해야 확실히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습니다.”
모 대선 후보의 선거 전략회의. 그런데 공약에 대해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이 어째 이상하다. 공약을 내거는 주체는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도 아닌 ‘머니(Money)뭐니당’. 직장인밴드 ‘프라이데이’가 유전무죄의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내건 당 이름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 정치권에서는 누가 대선후보가 되느냐를 놓고 기싸움이 뜨겁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19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2007 안티페스티벌-대통령과 춤을’ 선거캠프 준비모임이 그것이다.
문화운동단체 문화미래 이프가 다음달 8일 여는 본행사 준비를 위해 참가팀들을 소집, 각 당의 공약사항을 최종 조율한 자리. 각자 당명을 내건 참가팀들은 가상의 대통령 후보로서 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을 통해 힘없는 소수자들이 원하는 세상에 대한 밑그림을 펼쳐보였다.
준비모임에는 직장인 대표 머니뭐니당을 비롯, 모두 11개 당이 참가해 뜨거운 공방을 거친 끝에 공약의 세부 내용을 확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을 내세운 정당은 ‘이퀄(=)당’이다.
안양대 수화동아리 ‘예손’ 회원들로 구성된 이퀄당은 ‘수화를 제 2모국어로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당원 조원일(24)씨는 “영어, 독어 등 외국어를 배우는 10분의 1의 노력만 들여도 청각 장애우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서 “모든 사람이 수화를 쓸 수 있게 되면 어떤 사람이 장애를 갖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만큼 차별도 사라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을 1년 365일 춤추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춤공화국당’의 최경진(30)씨는 “외국은 즐기며 사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는데 우리나라는 왜 여전히 돈 버는 데만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배경을 설명한다.
‘1인 1춤 의무화 추진’을 세부 공약으로 내세웠다. 평소 주 2~3회씩 ‘스윙 바’에서 춤을 즐긴다는 최씨는 “건전하게 즐겨도 춤을 춘다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우리나라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는 엉뚱한 의견을 밝힌 당도 있다. 서울사대부설초등학교 뮤지컬반 어린이들이 모인 ‘발끈미래당’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되기 싫은 101가지 이유> 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무대에 올릴 계획으로 현재 맹연습 중이다. 발끈미래당의 이다영(11)양은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친구들 사이에서도 잘못을 하면 서로 탓하는 경우가 있지 않냐”고 반문한 뒤 “정치하는 어른들도 서로 남 탓만 하는 것이 싫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대답했다. 대통령이>
이밖에도 ‘혈왕당(혈기왕성당)’은 무용극을 통해 노인들의 복지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게이, 레즈비언 그룹인 ‘무지개당’은 성적 소수자들도 스스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또 ‘머니뭐니당’은 조세형평성과 양극화 현상 해소를 내걸었다.
행사 주최위원장인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이사장은 “춤은 혼자 추기도 하지만 함께 할 때 더 즐겁다”면서 “이번 행사를 소외된 정치가 아닌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어떤 공약이 유권자의 시선을 끌어 대통령의 꿈을 영글게 해줄 것인가. 그 열띤 유세현장과 결과는 6월8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공개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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