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예상을 깨는 감독들의 ‘깜작 용병술’은 때로는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130여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뉴욕 양키스의 명장 조 토레 감독은 올시즌 초반 불펜진의 난조로 팀 마운드가 와해되자 좌완 에이스인 앤디 페티트를 2차례나 중간 계투로 기용한 적이 있다. 브루스 보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도 샌디에이고 사령탑 시절 다른 타자들을 제쳐 놓고 타격 솜씨가 뛰어난 박찬호를 승부처에서 대타로 기용, 한국 팬들을 즐겁게 했다.
역시 투수인 서재응도 뉴욕 메츠에서 뛰던 2003년 몇 차례 아트 하우 감독에 의해 대주자로 기용된 바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분업화가 철저하게 정착된 메이저리그에서는 지켜야 할 나름대로의 ‘경계선’이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거쳐 만들어진 불문율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SK 김성근 감독의 기상천외한 용병술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 23일 대구 삼성전에서 투수 조웅천을 좌익수로 기용했다가 다시 마운드에 올리는 ‘변칙’을 구사했다. 또 조웅천이 야수로 들어가는 바람에 9회 등판한 정대현은 10회 무사 1ㆍ2루 찬스에서 어색한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들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김 감독은 연장 12회 말 마지막 수비에서는 전날 선발로 나와 56개를 던진 로마노를 투입하는 강수까지 뒀다.
경기 후 각종 야구 게시판에서는 김 감독의 용병술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역시 야구의 신”이라며 김 감독을 옹호하는 SK 팬들의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 프로야구를 고교야구 수준으로 퇴보 시켰다”는 주장이 더 많은 편이다. 한 프로야구 감독은 24일 경기 전 “어제 조웅천이 좌익수로 나갔다는 얘기를 듣고 웃음 밖에 안 나왔다. 투수가 마운드에 있다가 좌익수로 나가면 어깨가 식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는 결과적으로 선수생명을 단축 시키는 행위”라며 “로마노를 하루 만에 중간으로 쓴 것도 프로야구 초창기에서나 본 장면”이라고 비판했다.
김 감독은 지난달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승리보다는 팬들을 생각하는 스포테인먼트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올시즌 SK 구단이 프로야구판에 던진 가장 큰 화두도 스포테인먼트다. 물론 김 감독의 깜짝 용병술에 환호하는 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념’을 너무 많이 넣으면 요리 맛을 망치는 당연한 이치처럼 이 같은 변칙과 꼼수가 계속 된다면 그건 이미 팬들을 위한 스포테인먼트가 아니다. 오로지 승리지상주의에 매달린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굳이 ‘과유불급(過猶不及ㆍ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이라는 어려운 4자성어를 꺼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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