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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5월에 한번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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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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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시절, 5월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불편했던 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 대부분은 5월이 돼도 광주를 기억하지 않는다. 생활인으로서 빠듯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광주는 철 지난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10년 혹은 20년이라는 식의 특별한 계기가 없는데도, 안성기 김상경 등이 출연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 가 제작되고 광주를 소재로 한 책 몇 권이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강풀의 만화 <26년>이다.

계엄군으로 내려 갔다가 상관의 명령에 따라 얼떨결에 방아쇠를 당긴 중년의 기업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 5ㆍ18 당시 부모 가운데 한명을 잃은 젊은이들과 학살의 원흉을 처단한다는 내용이다.

확실히 구성, 대사, 상황 설정에 도식적인 면이 있다. 암살을 시도하는 것도 '만화적'이다. 그런데도 <26년>은 비장함과 문제의식이 두드러진다. 총을 쏘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총을 쏘라 명령한 사람이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투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학살 현장에 내몰려, 끝내 총을 쏜 기업가의 참담한 자책감도 진지하게 그렸다. 암살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강풀은 그것까지는 그리지 못했다.

만화 초반부에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나온다. 훗날 다시 만나자 다짐하며 총을 든 그들은 그러나 모두 목숨을 잃는다. 나는 그 가운데 한명이 혹시 윤상원이 아닐까 상상했다. 한동안 잊었던 그의 이름을 만화를 보다가 떠올린 것은, 역시 최근에 다시 나온 <윤상원 평전> 을 읽었기 때문이다.

윤상원은 80년 당시 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다. 5월 26일 그는 외신기자를 상대로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회견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미국 볼티모어선지의 브래들리 마틴 기자는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의 눈길은 부드러웠으나 운명에 대한 체념과 결단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의 눈길이 인상적이었다.' 브래들리 마틴은 훗날 광주를 방문, 윤상원의 부모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 윤상원은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을 접수하던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만 서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쳤다.

아끼고 따르던 동료, 선후배들이 2년 뒤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거행한다. 박기순은 공장에 위장취업했다가 연탄가스로 숨진, 윤상원의 야학 후배다. 둘의 영혼을 불러 혼례의 예식을 치른 그 자리에서 부른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 이다.

이 노래가 씩씩하고 결의에 차있는 듯하면서도 비장하고 슬프게 들리는 것은, 두 젊은이의 아픈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일보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이 광주 5ㆍ18묘역에서 그 <임을 위한 행진곡> 을 부르고 있었다.

광주라는 말에 "에이, 또 그 소리" 하는 사람이 많다. 아니 아무 관심 없는 사람도 많다. 두 권의 책을 읽은 나는, 그래도 그냥 넘기기에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의 교훈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다시 알았다. 5월에 한번쯤은 광주를 생각하는 것도 좋겠다.

박광희ㆍ문화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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