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행패를 못 이겨 경찰에 고소했으나 경찰이 남녀간 문제라며 방치, 결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면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2002년 8월 직장인 김모(여ㆍ당시 26세)씨는 헬스클럽에서 알게 된 이모씨와 사귀다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이씨가 이혼남이고 2명의 자녀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헤어지려고 했다. 그러자 이씨의 폭행이 시작됐다. 주먹 등으로 김씨를 때리는가 하면 흉기를 들이대며 “도망치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다.
2004년 9월에는 공기총과 시너를 들고 김씨 집 앞에 나타나 “김씨를 데려오라”며 분신소동을 벌여 경찰관 5명이 출동했지만, 이씨는 입건되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며칠 뒤 “신속히 수사해 구속해달라”며 이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이씨 아이를 가졌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애정문제로 치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약 열흘 뒤인 10월 초 김씨는 직장으로 찾아온 이씨에게 “아이를 지웠다”고 말했다가 격분한 이씨가 휘두른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살해됐다.
이후 김씨 부모는 고소에도 불구, 경찰이 신변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 주기동)는 24일 “국가는 김씨 부모에게 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김씨가 이씨를 고소할 때는 묵시적으로 자신과 가족에 대한 신변보호를 경찰에 요청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럼에도 애정문제에 따른 갈등으로 판단해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찰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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