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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전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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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전설의 고향

입력
2007.05.2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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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공포물에서 많이 본듯한…

어린시절 할머니 무릎 베고 들은 처녀귀신 이야기에, 관절 꺾는 사다코나 도플갱어 쌍둥이 이야기는 없었다. 다만 흰 소복을 입고 나타났다는 장화가 산발하고 와 억울함을 하소연했던 것도, 콩쥐가 동네잔치 못 가고 구슬피 울었던 것도 다 새엄마의 구박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고 있는 엄마가 죽었나 흔들어 깨운 적이 있었다.

어린나이에도 가족이란 이 견고하고 안전한 테두리 안에 다른 핏줄, 다른 혈통, 다른 여자가 끼어 드는 것을 걱정했을 정도로, <장화 홍련> 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십대 딸의 성적 방종에 대한 두려움과 가부장의 가계도안에 새 여자가 스며드는 데에 대한 심술궂은 위협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 장화 홍련의 비틀린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 소연과 효진, 언니와 동생인 이 쌍둥이 자매는 한날 한시 태어나 십년 전 한날 한시에 물에 빠졌지만, 언니 소연 만이 살아 남았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10년 만에 눈을 뜬 소연. 그러나 바로 그날 밤, 소연의 옛 친구였던 한 선비가 올챙이 밥이 된 채 익사한다. 불길한 전조가 온 마을에 퍼지고, 아니나 다를까 소연의 친구들은 차례차례 죽임을 당한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보는 이의 눈마저 핏빛 물이 들 것 같은 붉은색 모티프와 물에 빠진 영혼을 진혼 하는 듯한 물방울소리가 가득한 음악이 화면을 지배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공포영화의 모자이크 솔기가 툭툭 튀어 나와 심기가 불편 해진다.

이를 테면 일본귀신 사다코와 똑같은 관절 꺾는 처녀귀신이 나타나고, <소피의 선택> 의 메릴 스트립처럼 이 애랑 저 애중 누구를 살리고 죽여야 하는지 핏빛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엄마의 처지가 부박하다. 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플갱어 모티프에 <난 네가 지난 여름에 알고 있다> 식 공동체적 죄의식도 출몰한다. 이 정도면 <전설의 고향> 이 전설이 될 정도로 신식이다.

사실 공포영화는 그 어떤 장르보다 공포영화 특유의 영화 미학이 돋보일 수 있는 창의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소연의 어린시절 소꼽동무로 다소는 심술궂은 성질머리 의 선영의 살 속에 검은 깨가 무수히 박히면서 울부짖는 장면이 좋았다. 주근 깨, 혹은 죽은 깨의 구체적 현현. 이처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잊지 못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공포영화광 출신인 김지환 감독의 데뷔작 <전설의 고향> 은 참으로 아쉬운 면이 있다. 아니 아파트에서 자기 애를 떨어뜨릴까 말까 하는 유아살해욕망, 가족파괴욕망이 스크린에 차고 흘러 넘치는 이 마당에 아직도 ‘콩쥐냐 팥쥐냐’ ‘누구를 구할까’ 하는 시나리오가 왠 시대착오란 말인가.

이거야 말로 ‘자기! 나와 어머니, 그러니까 당신 어머니와 내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야?’ 라며 앙탈하는 여자친구도 물어보는 식상한 레파토리다. 게다가 유럽과 일본풍의 공포스타일을 통한 깜짝 쇼까지.

전설의 고향. 이러다가 좀 있으면 섹시한 구미호 귀신 대신 시꺼먼 늑대인간 나올라. 아웅.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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