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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5대 규제를 깨라] <3> 기업 발목잡는 입지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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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5대 규제를 깨라] <3> 기업 발목잡는 입지규제

입력
2007.05.2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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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규제… 농지규제… 그린벨트… "대체 어디에 공장을 짓죠"

#신세계는 최근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뻔했다. 명품 아웃렛 첼시와 손잡고 경기 여주군에 내달 초 오픈하는 신세계첼시 매장에 대해 건설교통부가 공사가 불법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건교부측은 수도권 자연보전권역내 판매시설의 경우 연면적 규모가 허용한도(1만5,000㎡이하)를 초과하는데다, 매장이 폭 20m도로를 사이에 두고 2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어 규정을 초과했다는 것.

자칫 건물 한 개만 사용이 가능해 반쪽짜리 매장으로 전락할 뻔했지만, 1개 법인 명의로 된 두 건물 소유주를 분리하는 간단한 절차로 위법논란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수도권에서 주택건설업을 하는 A사는 집 지을 땅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간단하게 유휴농지를 사들여 집을 지으면 될 것 같지만 일반기업의 농지 취득을 영농목적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택지 조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집 지을만한 곳은 거의 농지용도로 묶여 있어 개발이 쉽지 않은데다, 농지를 매입하더라도 땅주인이 개발 기대감에 따른 땅값 상승분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한숨쉬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외국의 경쟁업체와 맞서 싸우기 이전에 우선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이 가로놓여 있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도권규제, 농지규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등 각종 입지 규제들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이 같은 규제법에 막혀 최근 33개 기업이 56조원의 투자 기회를 포기했으며, 이로 인해 4만5,0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수도권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대상 기업의 40%가 10년 이내에 해외 이전을 계획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닉스의 증설 문제는 수도권 공장입지 규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이닉스는 13조5,000억원을 투자, 반도체 공장 3개를 증설키로 하고 기존 이천공장 인근에 추가로 공장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성역처럼 중시하는 지역균형개발론에 막혀 이천공장 증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제1라인 공장을 충북 청주에 짓기로 해 급한 불은 껐지만, 추후 이천공장 증설이 어려울 경우 신규 공장부지를 중국이나 해외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산업은 신ㆍ증설 타이밍이 중요한 산업으로, 수도권입지 규제가 지속될 경우 중국 등 해외이전이 불가피해진다. 첨단기술의 해외유출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입지 규제로 인한 어려움은 웬만한 기업이면 한 두개씩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삼성전자는 수도권내 연수시설이 연면적 3,000㎡ 이상 지을 수 없다는 규제 때문에 연수원 증설에 난항을 겪고 있다.

LG전자도 2009년 완공 예정인 서울 양재동 R&D센터의 과밀분담금 납부의무가 과중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화는 시화매립지내 130만평 규모의 화약성능 시험장용 부지를 관광산업단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시흥시가 공영개발을 요구하면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한화는 울며겨자먹기로 시에 매각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ㆍ진해 경제자유구역은 전체면적 3,171만평 중 그린벨트(792만평)를 포함한 녹지지역이 73%나 차지해 외국인 투자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재계는 공장설립시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공장설립 제도개선 및 절차간소화 방안’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공장을 새로 짓기 위해서는 수도권 39개, 비수도권 35개의 규제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개발 방지를 위해 도입된 ‘연접개발 제한’이 불필요한 도로를 만들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첨단공장 설립 때 지방자치단체 조례는 허용하지만, 국토계획법을 들이대면 불가능한 법제도상의 충돌도 있다는 것이다.

공장설립 과정에서 불명확한 규정과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도 적지 않다.

대한상의 기업애로종합지원센터 황동언 팀장은 “지구단위계획이나 각종 영향평가제도 등 관련부처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조차 명확한 기준이 없어 담당자의 주관에 따라 허가사항이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규제관련 법은 해외기업의 투자 유치에도 암초가 되고 있다.

덴마크의 레고그룹은 1999년 경기 이천시에 2억달러 규모의 레고랜드 조성을 추진했다가 관광지 조성면적이 법의 한도를 넘어선다는 지방정부의 경직된 법적용에 밀려 사업을 접었다.

최근 방한한 유니버설 파크앤리조트 토마스 윌리엄스 회장은 수도권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개장 의사를 강력 표명한 뒤, 건설교통부, 문화관광부 장관과 잇따라 면담을 가졌다.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이 인구 2,000만명 이상이 밀집된 데다, 인천공항이 가까워 외국관광객의 접근도 쉬워 테마파크 입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며 “하지만 입지규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레고랜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련 장관들을 만나 정부차원에서의 입지규제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상대 선임연구위원은 “수도권에 인구와 산업이 집중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보다 주택, 산업, 교통 등 합당한 관리시스템을 통한 규제선진화가 시급하다”며 “비효율적이고 과도한 규제는 과감히 풀어 동북아허브와 금융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 선진국 사례와 해법

우리나라의 입지규제는 수도권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다. 남한 인구의 절반인 2,000만 명 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환경오염, 인구집중, 교통체증 등 각종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수도권 인구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 같은 이유로 공장총량제, 대학정원 규제, 대학교와 연구시설 건립 규제 등 입지 규제가 겹겹이 포위망을 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도권 입지규제가 당초 목적인 지역격차와 인구집중 해소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수도권의 제조업 종업원수는 2.2%감소한 반면 인구는 1.12%증가 했다.

공장총량제 등으로 인한 인구 억제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의미다. 선진국에서는 입지규제로 인한 과밀 억제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크다는 판단아래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있다.

영국은 81년 외환위기 탈출과 수도 런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수도권의 공장 신·증설을 규제하는 공장건축허가제를 완전 폐지했다. 프랑스도 파리가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대도시와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지역을 대폭 확대했다.

공장은 과밀부담금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일본은 59년 대도시의 인구밀집을 막기위해 시행했던‘공장 등 제한법’을 폐지한 데 이어 공장의 대도시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72년제정한‘공장재배치촉진법’도지난해 없앴다. 또 내년에는 공장녹지 면적을 의무화한 ‘공장입지법’을 완화해 녹지 면적 비율을 낮출 계획이다.

90년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런 조치로 소니가 중국 비디오 카메라 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나고야 인근에 공장을 신설하는 등 일본 기업들의 유턴이 잇따르고 있다.

이 결과 일본 기업들이 2004년부터 3년 동안 쏟아 부었던 신규 투자비용 7,800억엔 중 80%가 일본 국내에 투자됐고, 2002년 853만㎡에 불과했던 공장 착공 면적이 지난해에는 1,567만㎡로 두배 가량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지나치게 형식화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시장 경제를 무시한 억제책보다는 지방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연구센터김신소장은“규제책의 존폐 문제는 찬반 양론이 모두 논리적인 일리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며“다만 행정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해 기업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설광언 교수는“오염과 인구집중을 과도하게 유발하지 않는 첨단 산업 등은 수도권에 수용할 필요가 있다”며“정부는 지방 우수 인력을 양성해 저절로 기업들이 지방으로 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형영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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