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수리공장을 운영하던 서른 두 살의 정주영은 건설업을 원했다. 당장 미군정청이 발주하는 일감도 많았지만, 어차피 정부수립 후 국토개발을 하다 보면 엄청난 공사물량이 쏟아져 나올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정주영은 1947년5월 건설회사인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현대건설의 모태가 된 회사다.
25일은 현대건설이 '회갑'일이다. 60년전 현대토건사가 세워진 날. 현대건설은 옛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이날은 현대그룹 탄생 6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때 대한민국 최대 그룹이었던 현대의 60주년 치고는 참 조용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건설은 유동성위기를 거치면서 현대그룹에서 완전 분리, 채권단 회사가 된 상태. 현대그룹 역시 자동차 중공업 정유 등 주력 계열사들이 모두 떨어져나가 버렸다.
60년의 의미를 되새길 주인이 없는 셈이다. 현대측 한 인사는 "정주명 명예회장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현대건설, 현대그룹 모습을 보면서 참 착잡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 60주년을 맞아 재계에선 '정주영'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기업인 정주영에 대한 일종의 그리움인 것 같다. 과연 그가 살아있다면, 요즘 같은 경제환경에서도 보통의 대기업들과는 좀 다르게 경영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기업인 정주영의 이미지는 사실 이중적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 재벌이 그렇듯 정주영도 정경유착, 선단경영, 황제경영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치인 변신은 실패로 끝났고, 경영권 승계과정도 큰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현대경제사에서 그보다 많은 인프라를 놓은 기업인, 그보다 많은 신사업을 개척한 기업인, 그보다 많은 투자를 한 기업인은 없다.
산업의 불모지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발전소를 짓고, 배를 띄운 인물이다. 현대건설 60년사에 기록된 경인ㆍ경부고속도로, 소양강 다목점댐, 고리원자력발전소, 서산간척사업 등 대역사들만 봐도 그의 도전적 기업정신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 잠들어 있다. 투자가 없고, 신사업개척이 없기 때문이다. 돈 버는 기업은 많지만, 투자를 하는 기업은 없다.
투자실종의 절반 이상은 분명 낡고 경직된 덩어리 규제 탓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기업 자신의 몫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더 이상 투자 리스크를 감내하려 하지 않고, 중소ㆍ벤처기업 역시 물건을 만들어 영업이익을 내기 보다는 상장이나 지분매각을 통한 자본이익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여건과 기업환경이 '정주영 시대'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당시엔 10개를 투자해서 1,2개만 건지면 됐지만, 지금은 둘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주주와 이사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사모펀드, 헤지펀드가 활개를 치는 M&A 소용돌이에서 살아 남으려면 기업은 방어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개발연대에는 '블루오션'도 많았지만, 지금은 투자대상 찾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투자해야 한다. 투자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투자하지 않는 기업엔 미래란 없기 때문이다. '정주영'으로 대표되는 창업 세대들이었다면 지금처럼 시대탓, 환경탓, 규제탓만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도 투자는 리스크였다. 기업가 정신이 아쉽고 그립다.
이성철 산업부 차장대우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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