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말이 천천히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말의 주인에게 상을 준다는 우화성 얘기다. 주인들은 말을 되도록 느리게 모느라 안간힘을 썼으나 그렇다고 사막에서 무한정 뭉그적거릴 수도 없는 일. 서로가 고민하던 차에 한 나그네가 그들에게 훈수를 했다. 이후 두 말은 앞 다퉈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훈수는 '서로 말을 바꾸어 몰아라'는 것이었다. 말은 달리는 게 본능이다. 자제력을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다른 말보다 앞서려는 본능을 계발하는 것이 경마라면, 길들이고 조종하여 자제력을 평가하는 것이 승마라 할 수 있다.
■올림픽 종목에 유일하게 참여하는 동물이 말이다. 말의 능력을 겨루는 게 아니고, 말을 다루는 인간의 기술(馬術)을 경연하는 것이다. 약 300만년 전 지금 모양의 말 조상인 에쿠우스가 나타난 이후, 짐승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아져 있다. 가장 중요한 습성은 공포성이다.
겁이 많아 투쟁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최고의 방어수단이다. 다른 특징으로 외로움을 피하려 무리를 형성하는 군서성, 콧소리나 발동작으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사회성도 있다. 무엇보다 암수끼리 호오를 드러내고, 질투와 애정을 느끼는 정조성을 갖고 있다.
■ 지난 일요일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투마(鬪馬)'라는 게 있었다. 몸무게 300㎏이 넘는 두 마리가 앞발을 들고 일어서 주먹을 교환하거나, 돌아서서 뒷발차기로 상대를 공격한다. 싸움을 피하려 들다가는 심판의 채찍을 감수해야 한다. 송곳니도 없는 이빨로 상대를 물어뜯기까지 한다.
공포성 군서성 사회성이 많은 말을 싸우게 하기 위해 암말이 동원된다. 발정한 암말을 곁에 두고, 두 마리의 결투를 유도한다. 흥분한 수말들은 평소의 정조성을 팽개치고, 채찍을 피하려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승리해도 암말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투계(鷄) 투견(犬) 투우(牛)야 그렇다 치더라도 투마는 좀 유감스럽다. 싸움에 소질 있는 두 마리를 싸우게 하는 것은 적극적 동물애호가가 아니라면 구경거리가 될 만도 하겠다. 하지만 싸울 능력과 의사가 없는 동물들이 발정의 본능에 이용당해 결투를 하는 모습이 딱하다.
말의 본고장인 제주도에서 지역축제의 일환으로 투마를 선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한국마사회가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생중계하는 방안까지 궁리한다면 말리고 싶다. 관중도 오히려 끔찍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말을 데리고 손님을 끌 수 있는 흥겹고 신나는 수단도 많지 않은가.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