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진이 유전자 조작 모기를 만들고 자연에 풀어 놓아 말라리아를 퇴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파리를 다룬 오래된 영화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우리에게 <플라이>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 1986)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이 영화는 커트 뉴먼 감독이 1958년에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를 다시 만든 것이다. 과학 실험을 하는 도중에 발생한 돌발 사고로 파리인간이 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불행한 과학자 이야기. 플라이>
사고의 핵심은 물건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기계 속에서 파리의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자에 섞여 들어가고 파리의 유전 형질이 점차 발현되는 것.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아닌지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파리의 형질을 가진 사람이 왜 불행해 지는가라는 문제이다.
사고가 만들어낸 불행은 주인공 세스가 사람 사회에 살면서 사람의 형질을 잃고 파리의 형질을 가지면서 발생한다. 세스는 손톱과 발톱이 퇴화해 벽과 천정을 타고 다닐 수 있고 입에서는 소화액을 분비한다.
성격도 급하고 난폭하게 바뀐다. 파리의 세계에서는 평범한 형질들이 인간의 세상에서는 흉측하고 괴이한 형질이 된다. 파리의 형질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럽지 않다.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큰 파열음을 낸다.
유전자 조작 모기를 자연에 풀어 놓는 것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이유도 똑 같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자연에 풀어 놓았을 때 조화가 깨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이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것은 모기이고 무려 3억 명 가량이 말라리아에 시달리고 있다. 유전자 조작 모기의 아이디어는 모기가 말라리아 병원체에 저항성을 가지도록 유전자를 조작하고 그 모기들을 자연에 풀어 말라리아 병원체를 옮기는 모기들을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진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유전자 조작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기는 보통 모기를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이 계획이 실현되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수백만 마리의 유전자 조작 모기를 자연에 풀어 놓았을 때 발생하는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아 문제이다.
말라리아에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생태계에 미치는 부작용은 없을까. 유전자가 다른 종으로 넘어가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번도 유전자 조작동물을 대규모로 자연에 풀어 놓는 일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유전자 조작 동물을 대규모로 자연에 풀어 놓은 일은 없지만 생태계에 그곳엔 없던 전혀 새로운 종을 풀어 놓았을 때 발생했던 생태학적 재앙은 수도 없이 많이 알고 있다. 새로운 종을 잡아먹을 포식자가 그 생태계에 없을 수도 있고 새로운 종의 사냥 전략에 속수무책인 동물들만 가득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 생태계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조절 메커니즘이 파괴되고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기도 한다.
남반구의 대양에 별처럼 박혀있는 섬에는 땅 위를 어슬렁거리는 포식자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새들이 마음 놓고 땅 위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유럽의 탐험가들과 함께 쥐, 개, 돼지와 같은 생물종이 유입되면서 새들은 알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산지인 갈색나무뱀이 사고로 괌에 풀린 것은 1950년 무렵. 이후로 괌의 새들은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비슷한 생태학적 재앙의 목록은 아주 길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간 토끼는 그 땅에 원래부터 발붙이고 살던 동물들을 어려움에 빠뜨렸다. 대규모 토끼잡이가 실시되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토끼는 여전히 성가신 해충이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 물쥐가 북아메리카로 들어가 댐과 습지를 점령했다.
1950년대에 브라질에 도입된 아프리카 꿀벌은 그곳에 살고 있던 유럽 꿀벌과 교배를 해서 아주 공격적인 꿀벌을 탄생시켰다. 이 꿀벌은 동물과 사람까지 공격한다. 19세기에 남미에서 아프리카로 옮겨 간 부레옥잠 때문에 아예 물길이 막혀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달팽이 이야기가 가장 서글픈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전부터 아프리카가 큰달팽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온 사람들이 늑대달팽이를 풀어서 아프리카 큰달팽이를 없애려고 했다.
그런데 늑대달팽이는 큰달팽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원래부터 폴리네시아에 살고 있던 더 작은 달팽이들에 입맛을 들였다. 현재는 약 72%의 폴리네시아산 달팽이가 없어졌다. 도둑을 袖막졍?강도를 만난 셈이다.
유전자 조작 모기를 자연에 풀어놓으면 위에서 이야기 했던 생태학적 재앙이 일어날까. 답은 불분명하다. 새로운 모기가 원래 있던 모기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행동해서 생태계를 완전히 뒤엎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생겼던 변이처럼 생태계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유전자 조작 모기를 통해 말라리아를 없애려는 기획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도 있다.
실제적인 위험보다 사람들이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더 중요하다. 유럽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상업적으로 기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과학자들의 판단 보다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인 위험을 불안하게 여긴다면 과학자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말라리아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전자 조작 모기를 위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거나 유럽에서 거부된 기술을 교묘하게 끼워넣어 아프리카에서 실험하려 한다고 느낀다면 유전자 조작 모기를 풀어 놓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 조작아닌 진화과정서 나타난'낫형 적혈구'말라리아 저항성 뛰어나 자연적 대책 부각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이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말라리아에 저항하는 유전자가 자연 선택된 사례도 있다. 우리가 보통 낫형 적혈구라고 부르는 적혈구를 만드는 유전자. 보통 적혈구는 납작한 원형인데 반해서 낫형 적혈구는 낫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다.
이런 모양으로 구부러진 것은 적혈구 안의 헤모글로빈을 이루는 단백질 중에서 아미노산 한 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헤모글로빈은 α사슬 두개와 β사슬 두개가 결합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낫형 적혈구 안의 헤모글로빈은 보통의 헤모글로빈과 비교해 볼 때 β사슬의 여섯번째 아미노산을 암호화하는 유전자가 GAG의 형태에서 GTG로 바뀌어 있다. 따라서 보통의 헤모글로빈의 경우 글루타민산이 들어가는 자리에 발린이 들어가게 된다.
아미노산 하나가 바뀐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 때문에 헤모글로빈 전체의 구조가 바뀌고 자신들끼리 서로 엉겨 붙으면서 섬유상의 구조를 이룬다. 이것이 침전되면서 적혈구의 모양도 변형되는 것이다. 변형된 적혈구는 산소를 많이 품지도 못하고 모세혈관을 막기도 한다. 그리고 적혈구가 쉽게 파괴되어 이런 적혈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적혈구 수가 보통 사람에 비해서 상당히 적다. 그래서 빈혈과 같은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낫형 적혈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빈혈과 같은 증상이 유발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가 만연한 지역에서는 이런 적혈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 낫형 적혈구가 빈혈과 같은 부작용만 수반하지 않는다면 유전자 조작 모기보다 훨씬 안정성이 높은, 진화적으로 검증된 말라리아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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