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의 관광성 해외연수가 끊임없이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귀국 후 제출하는 해외연수보고서도 대필, 표절, 부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원은 편하게 관광을 즐기고 돌아오면 그뿐이고, 의원들 명의의 보고서는 동행한 공무원들이 인터넷 자료를 짜깁기해 펴내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부실연수를 예방하기 위한 보고서 제출이 오히려 관광성 외유의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보다못해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11월 ‘지방의원 해외여행 규칙표준안’을 만들어 출국 보름 전에 여행계획서를 심사위원회에 제출하고 귀국 후 보름 이내에 보고서를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규칙을 따르는 지방의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의회 모 상임위는 2월 중순 브라질 꾸리찌바시를 다녀왔으나 3개월이 지나도록 연수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다. 의회측은 “전문위원실에서 보고서를 작성 중”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의회도 3월 동유럽 연수를 다녀왔으나 2달이 넘도록 보고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의회 관계자는 “시의원 한 명이 자료를 취합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3월 충북도의회의 그리스 이집트 터키 방문에 동행한 의회 직원들은 귀국 후 70쪽이 넘는 보고서를 쓰느라 며칠 밤을 새야 했다. 분량이 방대해 연수에 따라가지 않은 직원들도 보고서 작성을 도왔다. 한 직원은 “연수를 따라가면 의원님들 편안하게 여행하도록 도우면서, 보고서에 쓸 자료를 수집하고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의회도 올들어 7개 위원회가 해외연수를 다녀왔지만 인터넷에 공고한 해외연수보고서는 단 한 건도 없다. 의회측은 “보고서를 취합해 현재 인터넷에 올리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으나, 다른 관계자는 “모 위원회의 경우 전문위원 한 명이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는데 내용이 너무 길고 전문적이어서 (의원 수준에 맞게)내용을 줄이고 쉽게 쓰라고 요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북도의회 의원들도 지난해 10월 1인당 720만원을 들여 미주지역을 방문하고 52쪽의 보고서를 냈지만 이 또한 전문위원 등 공무원 4명이 일일이 의원들에게 소감을 물어서 작성한 것이었다.
연수보고서의 표절 및 부실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2월 광주 평등사회실천연대는 광주북구의회의 유럽연수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75쪽 중 연수소감을 제외한 65쪽이 인터넷 자료를 퍼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 중 영국 런던의 신도시 도크랜드 부분은 10여년 전 모 신문에 보도된 기사 전문을 베꼈다.
이밖에도 개인 블로그나 여행사 사이트의 자료를 표절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단체는 “컴퓨터에서 ‘복사’와 ‘붙여넣기’를 해 만든 보고서를 위해 의원과 공무원 13명이 3,380만원의 혈세를 들여 외유를 다녀왔냐”며 연수비용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충북도의회 해외연수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90% 이상이 방문국의 일반 현황과 관광명소를 소개한 부실 보고서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여행기 수준에 그쳤고 연수 목적인 정책대안은 실종됐다는 것이다.
올 초 유럽을 다녀온 경기도의회의 최모 의원도 보고서에서 “특정분야에 특정인원이 특정목적을 갖고 나가는 것은 몰라도 우르르 몰려나갈 때는 아닌 것 같다”고 시인했다.
이에 대해 한 지방의원은 “다소 관광성으로 흐른다 해도 해외에 나가면 자연스레 보고 배우는 것이 생기기 때문에 우물 안 개구리로 남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해외연수의 내실을 위해서는 연수계획을 사전에 주민에게 공개하고, 연수보고서도 의원 전원이 의무적으로 작성한 뒤 이를 유권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해외연수비용은 연간 기초의원 130만원, 광역의원 180만원이지만 2년치를 한꺼번에 쓰거나 외부도움, 자비를 보태는 등의 방법으로 유럽, 남미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k.co.kr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 이런 모범사례도…도봉구 김용석 의원
모범적인 해외연수를 실천하는 지방의원도 있다.
서울시 도봉구의회 김용석(36) 의원의 블로그(blog.naver.com/goldds2)를 방문하면 지방의원 해외연수의 모범답안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동료의원 6명과 올 1월30일부터 2월7일까지 일본을 방문한 뒤 보고서를 6회에 걸쳐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자치단체와 의회는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공공도서관, 쓰레기소각장, 자전거도로 등을 두루 견학한 내용이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더불어 현장감 있게 나타나 있다. 수박 겉핥기에 그치지 않고 각 기관과 시설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도봉구에 어떻게 적용할 지 고민한 흔적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예를 들면 도쿄(東京) 세타가야(世田谷) 트러스트 마을만들기 재단법인을 찾아가 브리핑을 받고 생태하천과 모험놀이터 등을 살펴본 뒤 이런 주민참여행정을 도봉구에 벤치마킹해 보기로 동료의원들과 뜻을 모으는 식이다.
특히 그는 지방의원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연수일정과 동선, 연수기획안도 주민들에게 출국 전에 빠짐없이 공개했다. 연수기획안을 보면 그와 동료의원들이 두 달 전부터 기획안을 만들고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전문가들을 초청, 토론하며 연수를 준비한 성실성이 돋보인다. 이미 성공적인 연수를 예약했던 것이다.
김 의원은 2005년 일본 연수보고서도 홈페이지에 상세히 올려놓았다. 이 때문에 그의 블로그에는 해외연수를 비난하기는커녕 격려하고 칭찬하는 댓글이 많다.
그는 “일반 관광여행사에 맡겨서는 제대로 된 연수일정을 만들기 어렵다”며 “행정자치부가 연수에 적합한 선진행정현장을 소개하는 자료를 지방의회에 제공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민단체와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해외연수심의위원회의 기능을 의회 스스로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인 김 의원은 1998년 만 27세의 나이로 도봉구의원에 당선된 3선 의원이다.
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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