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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낙태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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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낙태와 정치

입력
2007.05.2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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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인공임신중절, 낙태는 여성의 헌법적 권리로 인정된다. 1973년 텍사스의 한 여성이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텍사스 주(州)법의 합헌성을 다툰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낙태는 기본권인 프라이버시 권리, 자기 결정권에 해당한다는 기념비적 판결을 내린 결과다. 그러나 사회적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집권 공화당부터 'Pro-life'로 통칭되는 낙태 반대입장을 당론으로 고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은 'Pro-choice', 낙태 찬성론 쪽에 서있다.

■공화당 정치인 모두가 당론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아놀드 슈와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대표적인 낙태 찬성론자다. 그러나 레이건 시대 이후 사회적 보수세력이 당을 주도하면서, 낙태 반대론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인물만 대통령 후보로 뽑는 관행이 굳어졌다.

이런 마당에 내년 대선 후보를 가리는 경선 레이스 선두에 있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예비주자 가운데 유독 중도적 입장을 취해 공화당의 선택을 어렵게 할 전망이다. 줄리아니는 낙태의 '합리적 규제'를 지지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여성 본인과 의사, 가족 및 그가 믿는 신이 함께 결정할 문제"라고 말한다.

■공화당 유권자들이 이런 줄리아니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예상은 엇갈린다. 지난해 중간선거 결과 보수세력이 퇴조한 것에 비춰, 테러 대응 등 다른 이슈에서는 강경한 줄리아니를 수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공화당 유권자의 보수성향 자체가 바뀌지않은 마당에는 대선 후보로 용납할 가능성이 적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줄리아니 진영은 곧 입장을 더욱 분명하게 다듬어 유권자들의 평가에 맡길 방침이어서, 낙태 문제가 핵심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한다.

■ 우리는 형법에 낙태죄가 있지만, 모자보건법에서 모성 보호와 건전한 자녀 출산 등을 명분으로 인공임신중절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허용한계를 지키지 않아 한해 35만 건이나 되는 낙태 시술이 대부분 불법적으로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정당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가 낙태 반대입장을 밝히면서 "아이가 불구로 태어날 우려가 있는 때 등의 낙태는 용납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발언, 장애인들의 반발을 불렀다.

법 규정자체를 정확히 모르고 말한 것이 화근이다. 미국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정치와 사회가 그만큼 진지하지 못한 것을 새삼 드러냈다고 본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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