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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의 니하오] 셰창팅·천수이볜 끝나지 않은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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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의 니하오] 셰창팅·천수이볜 끝나지 않은 애증

입력
2007.05.2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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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셰창팅(謝長廷ㆍ61) 전 행정원장(총리)이 대만 여당 민진당 후보로 선출되자 대만여론은 셰창팅과 천수이볜(陳水扁ㆍ56) 총통 사이 10년 이상의 숙명적 대결을 화제로 올리고 있다. 계엄령 시대 민주화 운동의 동지이자 민진당 창당의 주역이었던 두 사람의 정치역정은 모진 인연으로 점철돼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첫 맞대결은 1994년 타이베이(臺北) 시장 경선. 이 때 천 총통은 압승을 거뒀고, 이후에도 항상 셰 전 원장을 앞서나간다.

타이베이 시장에 오른 천 총통은 사창가 정리 사업 등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총통 후보로 급부상했다. 절치부심하던 셰 전 원장은 96년 펑밍민(彭明敏) 민진당 총통 후보의 러닝메이트(부총통 후보)로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고, 98년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高雄) 시장 당선에 만족해야 했다. 2000년 천수이볜은 총통에 취임한다.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는 2000년 셰 전 원장이 가오슝 시장 자격으로 중국 샤먼(廈門)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대중 강경책을 구사하는 천 총통에 의해 좌절되면서 다시 고조됐다. 또한 천 총통은 2005년 셰 전 원장의 당내 지분을 감안해 그를 행정원장으로 발탁했지만 사사건건 견제했다.

당시 셰 전 원장은 무소속 의원들과 연합해 예산안을 마련하는 등 조정력을 발휘했지만 천 총통은 셰 전 원장을 10개월 만에 중도하차 시켰다. 2006년 천 총통의 친인척 비리가 터지자 셰 전 원장이 천 총통의 퇴진 요구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두 사람간 감정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두 사람은 이달 7일 민진당 총통 후보 경선에서도 대결을 피하지 못했다. 천 총통은 쑤전창(蘇貞昌) 후보를 밀었고, 셰 전 원장은 힘겨운 접전을 벌여야 했다. 대만 언론들은 향후 러닝메이트 선정, 총통 선거운동 등에서 양자가 쉽게 협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천 총통은 쑤전창을 부총통 후보로 밀고 있지만 셰 전 원장은 예추란(葉菊蘭) 전 운수통신부장관을 마음에 두고 있다. 관측통들은 임기 마지막까지 실권을 행사하려는 천 총통의 행보가 내년 3월 총통 선거의 핵심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완전히 딴판인 기질에서 비롯된다. 저돌적이고 직선적인 천 총통은 대(對)중국 대결 정책으로 대표되는 강경노선을 걷고 있고, 타협을 중시하는 실용파 셰 전 원장은 대중 대결을 최소화하자는 입장이다. 굳이 공통점을 꼽으라면 두 사람 모두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셰 전 원장은 경선 직후 낙마한 쑤전창 등 세 후보를 잇따라 찾아 협조를 당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만 정계에서는 “셰창팅의 목숨은 열 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노련하고도 질긴 정치력을 평가한다.

하지만 96년 부총통 후보 시절 한 사이비 교주로부터 48만달러를 지원받은 의혹이 있는 등 약점도 적지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국민당측은 “아무리 해도 국민당이 질 수 없는 게임이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하다.

대만 언론들은 셰 전 원장이 당내 경선을 넘었지만 현직인 천 총통이라는 고개를 무사히 넘어야 막강한 국민당 후보 마잉주(馬英九ㆍ57)와 후회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두 사람의 숙명적 대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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