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배럭 오바머 상원의원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을 달구는 사이 공화당에서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굳은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
범죄와 부패, 비능률 행정의 상징이었던 뉴욕을 강력한 지도력으로 탈바꿈 시켜 전국 지도자로 떠오른 공화당의 선두 주자다. 뉴욕 시장 재임 중 그가 펼친 시정은 지난 50년 이래 공화당이 지향하는 보수주의적 행정으로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다.
그래서 그에게 따라 붙는 별칭은 뉴욕 시장을 넘어 '미국의 시장'이다. 줄리아니가 고수하는 30% 중반의 지지도는 공화당의 간판 중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10%포인트나 따돌리는 우위다. 그러나 그도 2001년 9ㆍ11 테러 사건이 없었으면 지역 명망가에서 이렇게 전국 지도자로 도약할 수는 없었다.
테러는 미국의 비극이었지만 비극을 수습하고 극복하는 영웅적 활약으로 미국의 갈채를 받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어느 거리의 무숙자도 줄리아니의 업적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 9ㆍ11영웅 겨누는 검증 칼날
역사적 사건은 줄리아니라는 새 지도자를 키워냈지만 그는 지금 바로 그 사건으로 인해 뒷덜미를 잡히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당시 그는 현장 복구 작업을 기록적으로 단축하는 행정력과 리더십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작업에 동원한 인력에 방독면 착용 등의 안전 규정을 무시하고 신속한 처리만을 독려하는 바람에 8,000여 명이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시장 재직 시절 불도저 같은 스타일과 불독 같은 다혈질이 빚어낸 크고 작은 스캔들에 언론의 칼날이 향하고 있다. 대선이 아직 1년 반이나 남은 상태에서 선거 정국은 조기 과열이라 할 만하다. 강력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 길고 험악한 기간을 줄리아니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관심이다.
공직 후보에 대한 미국의 검증이 얼마나 예리한지는 익히 유명하다. 유력한 사람일수록 눈곱만큼의 에누리도 없다. 줄리아니에 대한 검증 기준도 뉴욕 시장이 아니라 당연히 미국 대통령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담금질의 과정에 검증이라는 가혹한 잣대로 참여하는 것은 언론의 공적 기여이자 권리다.
정치 과정 상의 언론이 한국이라고 다를 바 없다. 지지율 합산 60%대의 후보군을 가진 한나라당도 후보 검증의 폭풍권에 들어서고 있다.
당내에서, 후보들 사이에서 검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수준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검증의 방법과 수위를 두고 후보들끼리 다투는 것 자체가 애당초 검증의 진정한 의미와 절차적 당위성과는 거리가 멀다.
가령 줄리아니 전 시장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역시 시장의 업적과 리더십으로 대통령에 도전하는 경우다. 박근혜 전 대표는 야당을 이끈 지도력을 발판으로 정권을 되찾겠다는 사람이다. 이 전 시장은 가난과 역경을 뚫고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이력을 살았고,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권력 환경에서 성장해 독립한 정치인이다.
줄리아니를 스타로 만든 9ㆍ11 사건 속에 바로 그의 비정(秕政)이 숨어 있듯이 한 사람의 역정이야말로 지도자로서의 적격ㆍ부적격, 혹은 강점ㆍ약점의 자질과 요소들이 모두 담겨 있는 지대다.
가능한 최대한의 검증은 대통령을 가리는 필요충분 조건이다. 근거 없는 흑색 폭로는 민주 절차를 저해하는 범죄로 엄정하게 다룰 일이지만 이로써 검증의 제약이나 제한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 미래 검증도 해야 유권자에 도움
검증, 특히 과거 검증은 네거티브의 속성을 갖기 마련이지만 네거티브 없는선거는 없다. 문제는 유권자의 판단이며,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미래의 검증이다. 구체적 정책과 비전, 참모 구성, 후보의 성품 등을 따지는 것이야말로 검증의 으뜸이다.
선거를 불과 7개월 남겨 놓고 이 대목에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초보 단계이다. 최대한의 검증도 미래 검증을 거치지 않고는 최고의 검증이 될 수 없다. 유권자를 피해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두 사람은 부질 없는 논란에 시간과 애를 쓰지 말아야 한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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