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 글ㆍ사진생각의 나무 발행ㆍ584쪽ㆍ2만7,000원
1903년 6월 1일 인천 앞바다에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팔미도 등대가 점등한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근대식 등대’라는 자랑스러운 수식의 배경에는 한국 근대사의 짙은 그늘이 존재한다.
일본의 강압으로 1876년 개항한 조선이 일본의 군사적 필요에 의한 강권을 못 이겨 등대를 세웠던 것이다. 대륙 진출을 위해 해상 거점이 필요했던 일본은 팔미도에 이어 월미도, 백암, 북장사서에 잇따라 등대를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인 등대는 49기. 이 가운데 36기가 광복 이전에 설치된 사실은 일본이 우리나라의 등대 역사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 팔미도 등대에서 비춘 불빛이 어민에게 뱃길을 일러주기보다는 근대 문명의 수용과 일본제국주의의 확장을 인도했다는 점에서 ‘제국의 불빛’으로 부른다.
등대에 얽힌 제국주의의 흔적이 근대 문명이 수입된 길목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1885년 당시 ‘해가 지지 않던’ 대영제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빌미로 거문도를 무단 점령한다.
영국이 남해의 무수한 섬 가운데 거문도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문도는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 해역에 위치한 한일간 해상 통로로 러시아 함대의 길목을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거문도 등대는 영국이 철수한 뒤, 일본에 의해 1905년에 세워졌다.
저자는 거문도 등대를 바라보며 영일이 동맹을 맺은 세계사적 사건을 주목한다.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한 영일동맹의 굳건한 연대 하에서 치러진 전쟁이며 그 과정에서 거문도에서 ‘제국의 불빛’이 발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민속학을 전공한 저자는 등대에 대한 신파를 거부한다. 사람들은 등대를 관광 엽서에 등장하는 낭만과 고독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으며, ‘얼어붙은 달 그림자~’로 시작하는 <등대지기> 란 노래 역시 대중에게 등대에 대한 막연한 낭만을 덧씌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등대지기>
“2010년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아 4년 전 이미 100주년을 맞았던 등대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해보고 싶었다”는 저자는 한반도에서 대표적인 40기의 등대를 직접 방문, 그 곳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을 글과 사진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는 등대에 대한 고착화한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지나간 역사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등대를 지키는 항로표지원(등대지기)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부각시키고, 등대의 증축에만 관심을 쏟는 현 세태를 꼬집기도 한다. 현재 진행 중인 하조도 등대의 개축 과정에서, 등탑을 둘러싸고 있던 100년 가까이 된 돌담을 안전을 이유로 헐어버린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등대와 그 주변의 환경들이 모두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데도 등탑만 집중관리하고 증축하려는 현실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편의주의적 발상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등대의 의미를 발굴하고자 하는 것이 집필의 이유라고 재차 강조한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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